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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3] 뻐꾸기

바람아님 2013. 8. 20. 10:18

(출처-조선일보 2009.09.07 최재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성격 배우로 1975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정신병자도 아닌데 정신병원에 갇혀 온갖 수난을 겪는 남자를 열연하여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명배우 잭 니컬슨을 떠올릴 것이다. 영어로 '뻐꾸기(cuckoo)'는 물론 새의 이름이지만 속된 표현으로는 미친 사람이나 정신병자를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뻐꾸기는 아예 둥지를 만들지도 않기 때문에 이 영화는 내용은 물론 제목부터 이중적 상징성의 묘한 매력을 지닌다.

얼마 전 대구의 어느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 부부가 병원비를 마련할 수 없어 낳은 지 사흘밖에 안 되는 핏덩이를 단돈 200만원에 팔았다가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 있었다. 언론은 앞다퉈 이들의 행위를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야만으로 비난했다. 하지만 그 옛날 못살던 시절에 부잣집 대문 앞에 업둥이를 두고 가던 것과 무엇이 그리 다를까 생각해본다. 그들로부터 아기를 사서 이윤을 남기고 되판 아기 매매 업자는 결코 용서할 수 없지만 그 젊은 부부는 그야말로 병원비를 만들기 위해 죄를 저지른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의 값이 겨우 200만원이라니. 그저 가난이 죄일 뿐이다.

뻐꾸기는 왜 스스로 둥지를 틀지 않고 남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도록 진화한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오목눈이·할미새·개개비 등이 하릴없이 뻐꾸기의 새끼들을 길러주는 의붓어미들이다. 자연계 전체를 놓고 볼 때 뻐꾸기와 쇠새처럼 남에게 자기 자식을 떠맡기는 얌체 새들이 거의 1%에 이른다. 그렇다고 해서 남의 자식을 대신 길러주는 의붓새들이 모두 절멸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사회나 이런 정도는 알면서도 눈감아 주는 수준으로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한때 저출산으로 고민하던 프랑스는 '아이는 나라가 키운다'는 정책을 줄기차게 밀어붙여 합계출산율이 이제 2.0을 넘어 대체출산율에 육박하고 있다. 나는 결코 불륜이나 미혼 출산을 장려하자는 게 아니다. 하지만 우리도 프랑스처럼 고령화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국가가 나서서 마음 넉넉한 오목눈이와 개개비가 되어야 한다. 뻐꾸기의 탁란(托卵)마저도 너그럽게 받아줄 수 있는 그런 정책이 아니면 이 심각한 저출산의 늪을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