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09.12.04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1906년 9월 뉴욕의 브롱크스 동물원의 원숭이 전시관에는 이런 팻말이 새로 붙었다.
"아프리카 피그미, 이름 오타 벵가, 23세, 키 4피트11인치, 몸무게 103파운드. 콩고자유국 카사이 강 근처에서 새뮤얼 버너 박사가 데리고 옴. 9월 중 매일 오후에 전시됨."
실제로 원숭이 전시관 안에는 사람 한 명이 오랑우탄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오타 벵가는 콩고의 피그미족 출신으로서, 콩고 군대가 그가 살던 마을을 공격하여 부인과 두 아이를 죽인 다음 노예로 끌려가게 되었는데, 사업가 겸 선교사로 콩고에 와 있던 버너라는 미국인이 협상 끝에 그를 석방시켜서 미국으로 데리고 왔다.
동물원측은 오타 벵가에게 원숭이 전시관에서 해먹을 걸고 자며 때때로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도록 시켰다. 당시 신문은 오타 벵가가 식인종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는데, 이런 이미지에 맞추기 위해 바닥에는 일부러 뼛조각들을 뿌려 놓았다.
관람객들은 '사람 살을 뜯어 먹는다는' 오타 벵가의 이를 주의 깊게 살펴보곤 했다. 사람들이 그에게 험한 말을 하거나 쿡쿡 찔러보는 식으로 괴롭히자 그 역시 사납고 폭력적으로 대응했다.
이런 비인간적 행위에 대해 일부 사람들이 항의했지만 인종주의적 편견에 가득 찬 사람들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학교로 보내봤자 아무런 개선을 기대할 수 없으며, 피그미족은 원래 하급 인간이라는 기사를 썼다. 그 후 오타 벵가는 동물원에서 풀려나오기는 했지만 1차대전이 발발하여 고향에 돌아갈 희망이 없다고 판단되자 총을 훔쳐 자살했다.
이것은 지금부터 약 100년 전에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종주의적 편견을 안 가지고 있을까?
우리나라 대학교에 유학 온 많은 외국인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의 불친절과 차별, 왜곡된 시선 때문에 괴롭다는 점을 토로한다. 특히 우리보다 어렵게 사는 나라에서 온 학생들은 한국인들이 백인들에게는 친절하지만 자신들에게는 차갑게 대한다고 지적한다. 약간의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고 우리가 벌써 오만해지고, 뒤늦게 구식 인종주의를 배우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참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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