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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9] 공룡과 운석

바람아님 2013. 8. 18. 09:14

(출처-조선일보 2009.08.10 이화여대석좌교수·행동생태학)


지구의 역사에는 적어도 다섯 차례의 대멸종 사건이 있었다. 그 중 가장 최근에 벌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6500만년 전 거대한 공룡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린 사건이었다. 1980년 알바레스(Alvarez) 부자가 제창한 이 가설에 따르면 거대한 운석이 지구에 떨어져 그 충격으로 들뜬 먼지들이 햇빛을 가려 광합성을 할 수 없게 된 식물들이 죽고, 그 식물을 먹고 살아야 했던 초식공룡 그리고 또 그들을 잡아먹었던 육식공룡이 잇따라 멸종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질학자들은 멕시코 유카탄 반도 앞바다에서 폭 150km의 거대한 웅덩이를 발견했고, 그것이 지름 10km의 운석이 초속 30km로 달려와 충돌하여 생긴 것이라는 계산까지 해냈다. 그리고 바로 그 무렵에 생성된 백악기와 제3기의 경계 지층에서 지구에는 희귀하지만 운석에는 흔히 함유되어 있는 이리듐(iridium)이 평소보다 무려 30배나 높게 발견되었다. 이 밖에도 암석이 대규모로 녹아내린 흔적 등 여러 지지 증거들에 힘입어 이 가설은 어느덧 정설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1979년에 도미하여 진화생물학에 막 입문한 내게 이 설명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무지하면 용맹하다 했던가? 그렇다면 왜 악어와 뱀 등 공룡과 가까운 파충류 동물들은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았을까 하는 의문들을 제기하며 나는 소수의 반대파에 몸을 담았다. 그런 내게 지난 7월 30일자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인터넷판에 게재된 미국 워싱턴 대학 연구진의 논문은 설욕의 희열을 안겨주었다. 그들의 계산에 의하면 지난 5억년 동안 거대한 운석이 지구와 충돌했을 가능성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겨우 두세 차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며 그나마도 토성과 목성이 포수의 글러브가 되어 거의 확실하게 막아주었을 것이란다.

지난 5월에는 프린스턴 대학의 지질학자가 운석보다는 광범위하게 벌어진 화산 활동에 의해 공룡들이 죄다 사라졌을 것이라는 이른바 '화산설'에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설명들이 지나치게 큰 붓으로 세밀화를 그리려는 노력처럼 헛돼 보인다. 기후변화의 영향 속에 털가죽을 입고 나타난 우리 조상 포유동물과의 경쟁에서 지나치게 비대한 공룡들이 뒤처지고 말았다는 생물학적 가설도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