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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7] 치타와 영양

바람아님 2013. 8. 17. 11:00

(출처-조선일보 2009.07.27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민주당 의원들이 의원 사직서를 제출하고 거리로 나섰다. 불법 여부야 훗날 헌법재판소가 가려준다 하더라도 결코 정상적인 방법으로 통과된 게 아닌 미디어법 때문에 여야는 또다시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여야 국회의원이나 쌍용차 노사 모두 한민족이건만 어쩌면 이렇게도 소통하지 못하고 평행선만 달리고 있을까?

길짐승 중에서 달리기 순간 속도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동물은 아프리카에 사는 치타이다. 치타는 지구력이 부족하여 오래 달리지는 못하지만 시속 120km까지 달릴 수 있다. 미국 대륙의 평원에는 반지의 보석 받침대(prong)처럼 생긴 뿔을 가졌다고 해서 '가지뿔영양(pronghorn)'이라 부르는 초식동물이 산다. 이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다가도 어디선가 부스럭 소리만 나면 화들짝 놀라 내달리기 시작하는데, 달렸다 하면 거의 언제나 시속 100km로 달린다. 그런데 더 이상 미국 대륙에는 이들을 따라잡을 만큼 빨리 달릴 수 있는 포식동물이 없다. 그들의 조상이 살던 옛날에는 아마 치타 같은 동물이 미국 대륙에도 살았던 모양인데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 아무도 따라오지 않건만 그들은 오늘도 정신없이 내달리며 애꿎은 에너지만 낭비한다.

포식동물과 피식동물 사이의 이같이 쫓고 쫓기는 관계는 마치 구소련과 미국이 벌였던 군비경쟁과 흡사하다. 소련이 새로운 미사일을 개발하면 미국은 또 그걸 공중에서 요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개발하느라 엄청난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영양이 더 빨리 달리도록 진화하면 치타 역시 더 빨리 달리도록 진화해야만 멸종을 면할 수 있다. 치타와 영양이 어느 순간부터 둘 다 100km가 아니라 50km로 달리자고 합의를 보면 좋으련만 그들에게는 대표를 뽑아 협상 테이블에 내보낼 능력이 없다.

하지만 버젓이 원내대표까지 둔 우리 정당들이라고 해서 그리 나을 게 없다는 데 우리의 슬픔이 있다. 우리 인간은 이런 점에서 다른 동물들과 진정 다를 바가 없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고르바초프와 레이건 대통령이 마주 앉아 군비경쟁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았던가. 인간에겐 이 세상 다른 모든 동물들과 달리 고도로 발달한 언어가 있건만 우리는 왜 번번이 몸싸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