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3.07.02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7월 2일은 한 해의 중점이다. 윤년이 아니라면 오늘을 기점으로 182일이 지났고 앞으로 연말까지 정확하게 182일이 남았다. 아무리 시작이 반이라지만 아니 벌써 올해도 절반이 흘러갔다는 말인가? 시간의 속도가 이처럼 빨라지다가는 혹여 거꾸로 흐르는 건 아닌지 당황스럽다. "아니 벌써 밤이 깊었나,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네."
'시작이 반이다'는 속담은 다분히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시작이 중요한 만큼 무슨 일이든 저지르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하라는 뜻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은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가 어렵지 일단 시작만 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한 해의 삶을 마라톤에 비유한다면 우리는 지금 반환점을 돌고 있고, 등산으로 치면 정상에 올라 주변 풍광을 둘러보고 있는 셈이다. 이제 곧 하산해야 하는데 새해 첫날 했던 결심을 여전히 잘 지키고 있는지, 올해 목표를 절반 이상 달성했는지, 후반전에 대한 계획은 세웠는지 묻고 싶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바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종종 이 속담에 배신감을 느낀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지금껏 해놓은 일이 절반은커녕 아직 뚜껑도 제대로 열지 못했으니 말이다.
1990년대 초 미시간대에서 박사 학위논문을 쓰느라 여념이 없던 아내를 격려하기 위해 아내의 지도 교수님께서 우리 부부를 토요일 점심에 초대하신 적이 있다. 그때 그분이 아내에게 해주신 말씀을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The best thesis is the done thesis." 우리말로 번역하면 '가장 훌륭한 논문은 일단 끝낸 논문'이라는 뜻쯤 되리라. 그저 운 좋게 귀동냥한 말이지만 이 말은 '시작이 반이다'와 더불어 내 삶에 가장 중요한 지침이 되었다. 확신이 서면 일단 저지르고, 저질렀으면 어떻게든 반드시 끝을 보는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니까 심기일전하여 또 새로 시작하면 절반에 절반이 합쳐져 하나가 되리라는 어리석은 계산일랑 집어치우고 시작한 일들이나 어서 마무리하시라.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을 내는 거다. 그런 다음 남은 기간 동안 계속 다듬다 보면 어느새 그럴듯한 완성품을 손에 쥐게 될 것이다. 내일이 후반전의 시작이다. 시작하자마자 또 절반이 후딱 날아가면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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