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1.08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지난달(2009년 12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살폭탄 테러로 CIA 요원 7명을 폭사시킨 범인은 알 발라위라는 요르단 출신 의사로 밝혀졌다. 그는 미국·요르단·알카에다를 오가며 활동한 삼중 첩보원이었다. 알 발라위를 2년 동안 교육시킨 CIA는 그가 완전히 미국 편으로 돌아섰다고 확신하고 알카에다 내부에 침투시키려 했지만, 그는 오히려 고급 정보를 미끼로 CIA 요원들을 모이게 한 다음 몸에 두른 폭탄을 터뜨렸다.
이 사건은 중세 이슬람권의 하시신(Hashishin 혹은 Hashshashin)을 연상시킨다. 레반트 지역(시리아·레바논 등 동부 지중해 지역)과 카스피해 근처의 산악 지역에서 활동하던 시아파 분파인 하시신은 이슬람 내 반대파인 수니파 지도자를 비롯해서 기독교도 십자군 전사, 혹은 정치적 경쟁자들을 많이 암살하였다.
이들에 대한 전승 중 널리 알려진 것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나오는 산상노인(山上老人) 알라오딘 이야기이다. 그는 산속에 아름다운 정원과 화려한 저택으로 꾸민 비밀 요새를 가지고 있었다. 온갖 희귀한 화초와 초목이 자라는 정원에는 포도주·우유·꿀이 흐르도록 꾸몄고, 예쁜 처녀들이 노래 부르고 춤추도록 했다. 알라오딘이 누군가를 암살하고자 하면 청년들에게 마약을 먹여 이곳에 데리고 와서 온갖 환락을 맛보게 하여 마치 천국에 온 것처럼 믿게 만든다. 그러고는 그들이 잠들었을 때 다시 바깥세상으로 데리고 나온다.
그러면 이 청년들은 그들이 정말로 천국에 다녀왔다고 믿고,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이때 알라오딘은 신의 뜻이라고 속여 암살을 부추기면서, 그 일에 성공하면 보상으로 다시 천국에 가게 될 것이며, 혹시 도중에 죽더라도 그만큼 더 빨리 천국에 가리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이 청년들은 자신의 목숨을 던져가며 암살을 수행한다. 영어로 암살자를 가리키는 어새신(assassin)은 바로 이 하시신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의 사후관(死後觀)을 조종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의 인격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고 종교학자들은 말한다. 미국 CIA의 공작도 순교 후의 천국행을 꿈꾸는 강력한 지하드(聖戰)의 열망을 이기지는 못한 것 같다.
'人文,社會科學 > 人文,社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8] 개미의 공동감시제 (0) | 2013.08.25 |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41] 옹정제 (0) | 2013.08.24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20] 시작과 반 (0) | 2013.08.22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38] 산타클로스 (0) | 2013.08.22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5] 추석과 바이러스 (0) | 2013.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