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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8] 개미의 공동감시제

바람아님 2013. 8. 25. 11:48

(출처-조선일보 2009.10.12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남미 대륙의 핀치새가 갈라파고스 제도로 날아와 여러 섬들의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하며 다양한 종들로 분화된 현상을 진화생물학에서는 적응방산(adaptive radiation)이라고 한다. 유명인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사생활 장면을 찍어 언론매체에 팔아먹는 사진사들을 가리키는 이탈리아어 '파파라치'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화려한 적응방산을 하고 있다. 교통법규 위반차량을 신고하는 '카파라치'를 시작으로 불량식품의 제조 및 판매를 신고하는 '식파라치', 교습시간 또는 수강료 기준 위반 학원을 고발하는 '학파라치', 영화 파일의 불법 업로드를 적발하는 '영파라치' 등 실로 다양하다.

최근 한국전력공사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해 전례 없이 강력한 내부 고발 제도를 가동했다. 동료 직원의 뇌물 수수 사실을 신고하면 지급하던 종전의 포상금 상한선을 5000만원에서 20억원으로 올렸다. 아울러 기존에는 관리 감독자에게만 요구하던 신고 의무를 전 직원으로 확대하는 비리 공동감시제를 마련했다. 자, 이건 또 뭐라 불러야 하나? 뇌파라치? 비파라치?

함께 협동해야 할 동료들로 하여금 서로 감시하게 만드는 이 같은 제도는 자칫 공동체 정신을 해칠 수 있지만, 진화의 역사를 통하여 가장 효율적인 질서 유지 체제 중의 하나로 확립되었다. 인간 못지않게 복잡한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개미의 세계에서는 번식은 철저하게 여왕의 몫이고 일개미는 그런 여왕을 도울 뿐 스스로 자식을 낳지 않는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원칙일 뿐 실제로는 일개미들도 심심찮게 알을 낳는다. 여왕개미는 이른바 '여왕물질'이라는 페로몬을 분비하여 이 같은 역모를 통제하려 하지만 그 사회에도 어김없이 틈새를 비집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일개미들은 자체 감찰제(worker policing)를 마련했다. 어머니 여왕이 낳는 알은 부화하여 동생이 되지만 동료 일개미가 낳은 알은 조카로 태어난다. 조카는 동생보다 유전적으로 덜 가깝기 때문에 일개미는 자기들 중의 누군가가 알을 낳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서로를 감시하며 누군가 그 감시를 피해 알을 낳더라도 곧바로 먹어 치운다. 금전적인 보상을 전제로 한 인간의 공동감시제가 개미의 유전적 자율 시스템만큼 효율적일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