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人文,社會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43] 남방대륙(南方大陸·Terra Australis)

바람아님 2013. 8. 26. 09:51

(출처-조선일보  주경철 서울대교수·서양근대사)


유럽인들은 18세기까지도 지구 남쪽에 거대한 대륙이 존재한다고 믿고 이를 '남방대륙(Terra Australis)' 혹은 '미지의 남방대륙(Terra Australis Incognita)'이라고 불렀다. 이 개념의 기원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서기 1세기의 지리학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북반구에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같은 거대한 땅덩어리들이 존재하므로 지구가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쪽에도 그에 맞먹는 거대한 땅덩어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논거였다.

그곳은 사람들이 살지는 않지만, 기후가 온화한 지역이거나 혹은 열대지역이라는 식으로 상상력을 동원해서 묘사하곤 했다. 이 남방대륙의 북쪽 끝이 아프리카와 인도의 남단과 붙어 있을 것으로 짐작해서 인도양을 대륙에 둘러싸인 거대한 호수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근대에 해양 탐험이 진척되면서 이런 신화적인 내용들은 하나씩 지워져 갔다. 아프리카 남단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 명백해졌고, 한때 남방대륙의 일부라고 여겨졌던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가 섬이라는 사실도 차례로 밝혀졌다. 그렇지만 18세기까지도 여전히 남방대륙의 실존 여부는 최종적으로 판가름나지 않아서, 해양 선진국들은 경쟁적으로 남쪽 바다로 조사단을 파견했다. 혹시라도 정말로 온화한 기후의 거대한 대륙이 존재한다면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상의 횡재도 가능하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이 시기는 과학 발견과 국가의 위신, 그리고 국력의 신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긴밀히 맞물려 있던 때였다.

남방대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최종적으로 증명한 사람은 영국의 쿡 선장(Captain James Cook·1728~1779)이었다. 그는 1772~1775년 기간에 레졸루션 호를 지휘하여 남극권 바다를 샅샅이 조사해서, 과거에 사람들이 상상하던 종류의 대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가 항해한 곳은 열대지역이기는커녕 사시사철 극심한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지역이었다. 남방대륙이 아닌 남극대륙(Antarctica)의 존재가 알려지고 이곳에 대한 탐험과 연구 조사가 시작된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첫 쇄빙선 아라온 호가 남극의 신비를 밝히는 작업에 동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