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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28]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바람아님 2013. 8. 27. 12:09

(출처-조선일보  2013.08.27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만일 소설가 H. G. 웰스가 상상한 타임머신이 진짜로 만들어져 시간 여행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언제 어디로 가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1963년 8월 28일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앞 광장으로 가겠다"고 답했다. 내일은 50년 전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바로 그곳에서 그 유명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을 한 날이다. 녹음으로 들어도 온몸의 소름이 죄다 솟구치는데 내가 만일 그곳에서 25만명의 사람들과 함께 듣는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상상해 본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 넷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실제로 그날 그곳에 있었던 어느 시민운동가는 그날의 감흥을 '환희의 형상화(physicalization of joy)'라고 회고한다.

20세기는 갈등과 혁명의 시대였다. 그 100년 동안 우리 인류는 참으로 많은 걸 잃었고 또 많은 새로운 걸 얻었다. 감히 세계대전이라 일컫는 대규모의 전쟁을 두 차례나 겪으면서도 정치와 과학의 혁명적인 사건들로 인해 인류의 삶은 엄청나게 발전했다. 19세기도 나름 대단한 시기였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그 누구라도 타임머신을 타고 20세기를 건너뛰어 지금 이곳에 떨어진다면 이 세상을 보는 순간 아마 기절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21세기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마감할 것인가? 성격과 양상만 달라졌을 뿐 갈등은 여전히 우리 곁에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나는 21세기가 온갖 종류의 독버섯으로부터 우리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22세기로 들어서는 날 자랑스럽게 '갈등과 자유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난 7월 18일 두 마리의 돌고래 제돌이와 춘삼이를 제주 바다에 방류하는 행사에서 나는 시민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축사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적이 쑥스럽지만 킹 목사님의 흉내를 내며 연설을 마쳤다. 그의 통 굵고 기름진 목소리를 모사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연설의 마지막 부분을 단어 하나만 바꿔 나름 힘껏 내질렀다. 

"드디어 자유를 얻었습니다. 드디어 자유를 얻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드디어 '그들'이 자유를 얻었습니다."


(참고이미지-바다로 돌아가는 제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