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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41] 옹정제

바람아님 2013. 8. 24. 17:11

(출처-조선일보 2010.01.15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중국의 역대 황제 중에는 능력이 출중한 인물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청나라 옹정제(雍正帝)만큼 꼼꼼하고 성실한 제왕은 흔치 않을 것이다. 천자는 일일만기(一日萬機)라 하여 하루에 1만건의 사무를 처리한다고 할 정도로 바쁜 일과를 보냈다.

매일 새벽 4시 이전에 기상하여 선대의 역사인 실록, 제왕의 명령과 가르침을 모은 조칙집(詔勅集)과 보훈(寶訓)을 한권씩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7시까지 식사를 마친 후 알현을 청하는 자들을 연이어 접견하였는데 대개 오후까지 계속되었다. 중간에 틈이 나면 학자를 불러 경서와 역사 강의를 들었다.

당시에는 보통 저녁 7~8시가 취침시간이었지만 옹정제는 밤 시간을 이용해서 주접(奏摺·지방관들이 황제에게 직접 올린 보고서)을 읽고 유지(諭旨·붉은 먹으로 쓴 황제의 답장)를 써 보냈다. 이렇게 하루 저녁에 처리한 문건이 적어도 20~30통, 많게는 50~60통에 달했다.

옹정제는 관리들에게 자신의 의견이나 자세한 보고사항들을 숨김없이 보고하도록 주문했다. 제대로 일을 못하거나 헛된 보고를 올리는 자에게는 "금수라도 너보다는 낫다, 눈가림만 하는 사기꾼, 무학하고 무능하며 욕심만 많은 놈" 하는 식으로 가혹한 질책을 쏟아 부었다. 이런 정도로 이야기를 할 때에는 물론 그만큼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방에 밀정들을 두어서 정보를 크로스 체킹하고 있었던 것이다. "짐은 이 일을 이전부터 확실히 알고 있었다. 너는 이제 와서 무슨 낯으로 보고하는 것이냐…너희들이 정치를 어떻게 하는지 짐이 모르고 대충 넘어갈 것 같은가?" 황제에게서 이런 질책이 담긴 편지를 받으면 아마 등에 식은땀이 흘렀을 것이다.

그의 거실의 기둥에는 '原以一人治天下(천하가 다스려지고 않고는 나 하나의 책임) 不以天下奉一人(이 한 몸을 위해 천하를 고생시키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이라는 대구를 뽑아 써 붙였다. 일부 정치가들이 상대방을 향해 '제왕적'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제왕이 어떤 일들을 하고 있었는지는 알고 그런 말을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