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삼성전자 주가가 주당 191만4000원으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 200만원을 눈앞에 둔 날 삼성그룹의 총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특별검사팀으로부터 '피의자' 신분으로 출두하라는 소환통보를 받았다.
검찰과 특검은 삼성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등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합병을 성사시켰다며 '뇌물죄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우선 과거 얘기와 남의 나라 얘기부터 해보자.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1988년 5공 일해재단 청문회에서 "왜 돈을 냈느냐"는 질문에 "달라니까 줬다"고 했고, 지난달 최순실 청문회에서 구본무 LG 그룹 회장은 "정부 압력에 왜 기업들이 돈을 내냐"는 질문에는 “정부 정책에 반대할 사례가 아니다(반대할 수 없다)”고 했다. 정주영 회장은 이후 1992년 통일국민당을 창당, 정치권력에 당한 서러움을 직접 풀기 위해 정치에 참여하기도 했다.
삼성은 김영삼정부와 이명박정부 때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큰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지금은 병상에 있는 이건희 회장이 '정치인은 4류, 공무원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베이징 발언을 한 1993년이 첫번째였고, 2011년 'MB노믹스'의 경제성적표에 대해 '낙제는 면했다'는 발언이 있을 때가 두번째다. 이 두 마디로 삼성은 정권으로부터 대대적인 세무조사와 압박을 받았다.
한국적 현실에서 정치권과 기업인간의 관계는 '갑'과 '을'이 아니라 '병'이나 '정'쯤 된다. 검찰과 경찰, 국세청, 공정위 등 사정 당국을 동원한 무력압박을 견딜 수 있는 기업은 없다. 특히 기업들에 우호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정권에서 무리한 요구는 더 늘었다는 게 재계의 얘기다.
2009년 5월29일 시청광장이 내려다보이는 한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한 삼성 계열사 모 사장(지금은 현직을 떠났다)은 식사가 끝날 무렵 주머니에서 검은색 넥타이를 꺼냈다. 당시 시청광장에서 진행되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노재에 참석해 고인을 추모하고 싶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그는 "실용주의'라고 떠들었던 이명박정부보다 참여정부가 더 진정한 실용주의 정부였다"며 "그래서 오늘은 고인을 기리기 위해 약속을 시청 근처로 잡았다"고 했다. 기업 하기에는 그때가 더 좋았다고도 했다.
반면 이명박정권 때는 그의 단골 메뉴인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로 기업들을 쥐어짰다고 한다. 미소금융이 그랬고, 4대강 사업 추진 과정에서도 그랬다고 한다.
이번 정권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창조경제혁신센터도 그렇고, 미르와 K스포츠재단도 그랬다. 시쳇말로 '아는 놈이 더한다'는 것이다. 걸핏하면 기업들에 "돈 내라, 센터 지어라"는 등 정부가 할 일을 기업에 떠넘기고, 결국 이 지경까지 왔다는 것.
이런 막무가내 정권은 동서양을 막론한다. 오는 20일(현지시간) 출범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신정부도 마찬가지다. 전방위적으로 자국 내 공장설립 압박에 속된 말로 '개길 수 있는 기업'은 없다.
작고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실리콘밸리의 기업인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미국으로 공장 이전을 요구할 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버텼다. 당시 애플은 "우리의 임무는 가능한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지 실업률을 낮추는 것이 아니다"라고 맞받아쳤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애플의 입장도 달라지고 있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애플은 애리조나 메사에서 자사 데이터센터 서버 제조공장을 짓기로 하고 정부에 시설 승인을 요청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노동비용이 비싼 미국에 제조시설을 마련하는 것은 애플의 주요상품들이 해외에서 생산되는 것을 비난하는 트럼프 당선자 때문"이라고 했다. 정치권력이 기업을 압박하면 세계 최대 기업 애플조차도 버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기업이 정권의 요구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청탁과 압력)과 기업이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과제(합병이나 실적)를 푸는 것은 별개 문제다.
말 한 마디 잘못해서 대대적 세무조사를 받는 정권이라면 '부탁'(사실상 압력)을 안 들어줄 수 없는 게 기업의 생리이자, 아킬레스건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무리한 합병을 했고, 이 과정에 청탁이 있었다는 게 검찰이나 특검이 '박근혜-최순실'과 삼성을 엮으려는 고리다.
정확히 계산하진 않았지만 세금을 다 내고도 남는 재산으로 매일 1억원을 써도 100년간 다 쓰지 못할 재산이 그에게는 있다(늘어나는 이자는 제외하고도). 보유지분을 다 팔고 편히 떵떵거리며 놀고 먹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주변의 갖은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현재의 위치를 지키려는 것은 단순히 지배력 강화를 위해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기업경영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중하다고 배운 기업가 집안의 피가 그의 몸에 흐르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기업가의 길을 멈추도록 하는 사회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게 옳은 것일까.
오동희 기자 hu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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