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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없이 '내가 최고야'… 잘난 척 지식인들 꼬집기

바람아님 2017. 1. 22. 06:48

(조선일보 2017.01.21 유석재 기자)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토머스 소웰 지음 |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 484쪽 | 2만3000원


1980년 미국 대통령이 된 로널드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부르고 무력의 

우위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건 평화를 제일의 가치로 여기던 당대 지식인이 아주 싫어하는 방식이었고 

당연히 반발을 일으켰지만, 실제 역사는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냉전 종식으로 흘렀다.


"지식인에 의해 더 나빠진 것을 열거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사회 내 한 집단으로서 지식인의 본질과 역할에 대해 분석한 이 책은 집요하면서도 

냉소적인 방식으로 지식인의 초상화를 그린다. 

자기 전문 분야 밖 문제에 대한 생각은 형편없고, 미래는커녕 코앞의 일도 내다보지 못하면서 

'대중을 이끌어야 한다'는 우월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면서 반성도 없다.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 봐도 오히려 사회 갈등을 고조시킨 장본인이 바로 그들이었다는 것이다. 

지식인의 분발과 각성을 촉구하는 반면교사의 계기가 될 만한 책이다.


책소개


이 책에서 말하는 지식인은 의미를 좁혀서 사상을 최종 산물로 내놓는 사람들로 국한된다. 

캠퍼스나 연구소 등의 지식인과 그들의 지식을 전달하거나 신봉하는 사람들 등이 결합해 지식인 계급을 이룬다.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지식인들의 비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인생의 좌절과 병, 모순 중에서 많은 것을, 다시 말해 인간의 조건에 따르는 ‘비극’을 인간이 사는 물리적인 세계의 고유한 

제약 때문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단순히 문명 자체를 지켜나가는 데만도 엄청난 노력이 지속적으로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노력도 새로운 이론이 아니라 실제 경험을 근거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비전을 이 책에선 ‘비극적 비전’이라 부른다.


한편엔 압제와 빈곤, 불공정, 전쟁은 모두 기존 제도의 산물이며, 이 문제의 해결에는 기존 제도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 제도를 바꾸려면 제도를 떠받치고 있는 사상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이 사상을 바꾸는 일은 양심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지식인의 임무이다. 이런 비전을 이 책에선 ‘신성한 비전’이라 부른다.


[알라딘 제공]


저자소개 :


저자 : 토머스 소웰

저자 토머스 소웰(THOMAS SOWELL)은 미국 경제학자.


1930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개스토니아에서 출생해 뉴욕 할렘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중퇴하고 해병대에 입대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1958년에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1959년에 콜롬비아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1968년에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코넬대학과 UCLA 등 대학을 비롯해, 어번 인스티튜트 등 여러 싱크탱크에서 활동했다.


저서로 〈A CONFLICT OF VISIONS〉〈THE VISION OF THE ANOINTED〉 

〈THE QUEST FOR COSMIC JUSTICE〉 등이 있다.


역자 : 정명진

역자 정명진은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기자로 사회부, 국제부, LA 중앙일보, 문화부 등을 거치며 20년 근무했다.


옮긴 책으로는 〈부채, 그 첫 5000년〉(데이비드 그레이버), 〈당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심리실험 45가지〉

(더글라스 무크), 〈상식의 역사〉(소피아 로젠펠드), 〈타임: 사진으로 보는 ‘타임’의 역사와 격동의 현대사〉

(노베르토 앤젤레티) 등이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목차


머리말 

1장 지성과 지식인들 

2장 지식과 개념 

3장 지식인과 경제학 

4장 지식인과 사회적 비전 

5장 미디어와 학계가 선택하는 현실 

6장 지식인과 법 

7장 지식인과 전쟁 

8장 지식인과 전쟁: 역사의 반복 

9장 지식인과 사회 


[예스24 제공]


출판사 서평


지식인이 그린 지식인들의 슬픈 초상화!


지식인이라면, 대체로 개념들을 체계적으로 적용하고 자신의 생각에 대한 검증에도 더 철저할 것으로 짐작된다. 

사고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아예 지식인이라 불리기 어려울 테니까.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이건 선입견일 뿐이다. 

자신의 전문 분야 이외의 분야로, 예를 들어 사회적 이슈로 나서면, 지식인들의 사고도 영 형편없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지식인은 의미를 좁혀서 사상을 최종 산물로 내놓는 사람들로 국한된다.

캠퍼스나 연구소 등의 지식인과 그들의 지식을 전달하거나 신봉하는 사람들 등이 결합해 지식인 계급을 이룬다.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지식인들의 비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인생의 좌절과 병, 모순 중에서 많은 것을, 다시 말해 인간의 조건에 따르는 ‘비극’을 

인간이 사는 물리적인 세계의 고유한 제약 때문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단순히 문명 자체를 지켜나가는 데만도 엄청난 노력이 지속적으로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노력도 새로운 이론이 아니라 실제 경험을 근거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비전을 이 책에선 ‘비극적 비전’이라 부른다.

한편엔 압제와 빈곤, 불공정, 전쟁은 모두 기존 제도의 산물이며, 이 문제의 해결에는 기존 제도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 제도를 바꾸려면 제도를 떠받치고 있는 사상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이 사상을 바꾸는 일은 양심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지식인의 임무이다. 

이런 비전을 이 책에선 ‘신성한 비전’이라 부른다. 

게다가, 이런 비전들을 현실로 옮기려 노력하는 전략을 보면 안목이 장기적이지 않고 대부분 지나치게 단기적이다. 

두 부류가 사회를 보거나 자신을 보는 시각부터 이렇게 다르다 보니 당연히 대립하게 되어 있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사회 각 부분이 점점 전문화됨에 따라 아무리 많이 아는 지식인도 전체 사회에서 통용되는 지식의 1%를 알기도 불가능하다.

이는 곧 지식인도 자기 분야를 벗어나면 그야말로 아마추어란 뜻이다. 

그런데도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99%의 지식을 두루 나눠 갖고 있는 대중을 이끌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어느 시대나 장소를 막론하고 지식인의 이런 견해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자신의 주장에 대해 경험적 근거를 제시하거나 과거 역사를 돌아보려는 노력을 

조금도 하지 않는다. 

지식인 개인을 두고 보면 예외가 많겠지만 지식인 계급 전체를 놓고 보면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지닌다. 

오늘날에 워낙 과학이나 기술, 의학 분야의 발달이 눈부시다보니 모든 분야가 두루 다 발달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지식인들이 활동하는 분야만을 놓고 보면 지식인들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매우 유식한 사람도 사회과학 분야의 학자들이나 해체주의자 등이 제시한 사상의 결과로 삶이 더 나아진 예를 

3가지만 제시하라는 주문 앞에서 쩔쩔 맬 것이다.”

경제, 사회, 전쟁, 법률 등의 분야를 두루 살피면서 과거 지식인들이 한 역할과 지식인들이 역사에 남긴 오점 등을 둘러본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등을 거치면서 지식인들이 한 행태와 인류에 미친 영향을 보면 

과연 지식인의 역할이 있기는 하는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 지식인들의 행태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오늘날의 지식인들이 자신을 살필 수 있는 거울인 셈이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 게시자 추가 자료 >>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  -  사르트르

  성숙한 인간이란 젊은 사람이건, 나이 많은 사람이건,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책임의 윤리를 따름으로써, 끝내 나는 여기에 섰다든가, 나는 달리 행동할 수 없다는 점까지 생각해서 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정신적으로 죽지 않으려면 지식인들은 이러한 지위를 찾아야 한다.

   지식인들은 어느 시대에나 항상 비판을 받고 있다. 

지식인들이 자기와 무관한 일에 관여하려고 한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비판이다. 

지식인이란 사회적으로 중요한 기능인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렇지만 지식인은 고독하다. 

  지식인은 중간계급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 고독은 운명적일 수밖에 없다. 

지식인은 내부에 보편성과 특수성의 갈등을 지니고 있는 자이다. 또 그 특수주의에 행동으로 대항하는 자들이다.


  사르트르는 지식인들이 해야 할 일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첫째, 대중계급 내에서 영원히 되풀이 되어 나타날 이데올로기와 싸우는 일이다. 

지식인은 모든 이데올로기를 폐기해 버리는 데 힘써야 한다.

  둘째, 지배계급에 의해 주어진 자본으로써의 지식을 민중문화를 고양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일이다.

  셋째, 혜택받지 못한 계층 안에서 실용지식 전문가가 배출되도록 하여,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계층과 유기적 지식인이 

될 수 있도록 힘을 써야 한다.

  넷째, 지식인 고유의 목적(지식의 보편성, 사상의 자유, 진리)을 되찾아 인간의 미래를 전망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눈앞의 당면 과제를 넘어서 궁극적으로 성취해야 할 목표를 보여줌으로써 진행 중의 행동을 근본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권력에 대항하여 대중이 추구하는 역사적 목표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지식인들은 끝없는 자기 투쟁 속으로 자신을 몰아 넣지 않으면 안된다. 영원한 자기 비판은 자기의 모순을 직시하고 

과감히 인정하면서 자신이 결코 어떠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 때 가능하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을 철저히 비판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자만이 지식인이다.


  지식인은 근원적인 목적을 수호하는 자다. 근원적인 목적이란 인간의 해방, 인간의 보편화, 인간의 인간화를 의미한다.

  사르트르는 이런 과정을 통해 지식인이 지배 계급의 헤게모니를 거부하고, 민중 계급의 옹호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지식인의 역할은 모든 사람을 위해 자기 모순을 경험하며 모든 사람을 위해 그 모순 대립을 극복하는 것이다.

  사르트르에게 있어서 지식인은 지적 능력과 관계되는 일을 하는 동안 보편주의적 전문 지식과 진리를 인간 전체로 

보편화시키고자 한다. 즉 어떤 외부의 힘에도 자신의 소신을 지켜 가는 자인 것이다.

  지식인은 인종주의, 민족주의, 제국주의 등과 같은 편견으로부터 해방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또 혜택받지 못한 계층의 행동에 대해 구체적인 연대를 맺어야 한다. 행동을 시작하기 전에 판단을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자신을 통합시키며 참여해야 한다. 그 행동이 자기 속에 내면화되어 자신을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

  루이스 코저(Lewis A. Coser)가 논한 지식인이란 본질적인 사상을 철저하게 탐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진실한 탐구를 통해 일반 사람들에게는 흐릿하고 불분명한 이익과 욕구까지도 지식인에게는 더 한층 확실하고 

뚜렷한 대상으로 부각된다. 


  그리고, 만하임(K.Mannheim)이 말하는 지식인이란 이해의 갈등을 사상의 갈등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사회의 불평이나 불만의 잠재적인 원천을 구체화하고, 그 사회내의 미정적인 사안들을 골라내어 방향을 부여하며, 

의미를 제공한다.


   오늘날 바람직한 지식인상이라면, 역사의 예를 보더라도 국민 대다수를 위해 어떤 공헌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절실하게 느껴지는 문제들을 찾아 해결해 나가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사회변혁에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주어진 일에 소신을 갖고 추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둘은 상호 대립적인 것 같지만, 그렇게 상호 모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가령 누가 특정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사람이라면, 만일 자신이 원치 않는 사회 체제가 있을 때, 그 사회 체제를 비판하는 것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노력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역할은 기존의 사회 체제를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는 사회 과학적 문제 

의식과 함께 그러한 변혁을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인 사회적 메커니즘을 찾아서 왜곡된 인식을 올바로 세우는 것이다.

지식인의 행위 동기는 진리, 선, 정의, 인류애와 같은 절대적인 가치와 도덕성이다. 

  합리적 계산이나 공리주의적인 이익이 아니라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당위성에 기초하기 때문에 비윤리적이고 반도덕적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인식될 때는 기존 질서에 대해 가차없이 도덕적 분노를 터뜨린다.

  그리고, 현재의 사회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 의식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경우, 현재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냐,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우리 민족에게 이익이 되겠느냐 하는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이념을 사회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식인들 자신의 끊임없는 자기 비판의 노력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올바른 가치 판단을 제시하고, 역사에 대한 예지 능력을 갖는 동시에, 그것을 상황 속에서 들춰내는 것이 바로 지식인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미국의 19세기초 노예 폐지론자들은 정치에 개입했다기보다, 일반 시민들의 도덕심과 윤리 의식을 분발시켜, 

노예제도의 폐지를 주장한 자들이다. 그들은 미국이 신봉하는 기독교적 윤리나 자연법 사상 체계와 대립되고 있는 

노예 제도를 부각시킴으로써, 여론을 수렴하여 입법화하려 했다. 집회, 바자회, 야유회, 축제 등을 통해 그 동조자를 200여만 

명으로 증가시킨 다음, 의회의 로비 활동을 통해 마침내 정치 문제화시켰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비록 정치가로서 자질이나 역량이 부족하다 해도, 현실적으로 비인도적 문제를 공적 문제로 승화시킬 

수 있는 젊은 자식인의 자세이다. 이들이야말로 권력에 편승하지 않고, 지식인으로서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진리를 성취한 

지식인의 표상이다.

그리고, 드레퓌스를 옹호한 프랑스의 일단의 지식인들은 오늘날 지식인상의 전형을 마련해 주었다.

  개인의 이익 추구도 아니고, 정치 권력의 장악도 아닌 한 사회의 이념과 진실을 옹호하기 위해 이들은 열정에 찬 의지로 

정치 속에 뛰어 들었던 것이다. 이들은 보수주의자들이 숭배한 국가 권력의 절대성과 우월성에 반대했다. 

  인간의 권리와 정의가 침해된다면, 기존 사회 질서를 파괴해서라도 진리를 옹호하는 것이 지식인의 의무라고 믿었다.

  동구권의 몰락이나 소련 사회의 해체, 그리고 서구 사회 민주주의 체제의 쇠퇴를 통해서 우리가 배운 교훈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변혁 지향적인, 추상적이고 경직된 이론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인간의 노력과 의지와 희망과 책임감이 없이는 어느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점과 관련해서, 사물을 보는 전반적이고도 전략적인 시각을 조율해 주어야 할 책임을 가진 집단이 지식인 집단이다. 

그리고 이 지식인 집단의 역할은 더 이상 변혁 지향적인 것이 아니라, 건설적인 대안을 가진 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이다.

  지식인 집단은 새로운 사회 변화의 추세를 읽어내고 거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위한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원문보기 http://blog.ohmynews.com/jabidj/108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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