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손을 잡거나 이야기를 하며 가거나 하는 일은 없는 걸로 보아 오래 산 부부인가 하고 짐작한다. 자식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독립해 떠났을 것이다. 대개는 둘 사이에 한 뼘 정도의 공간을 두고 보조를 맞춰 나란히 걸어간다. 이게, 두 노인이 다투거나 하여 서로 심기가 좋지 않으면 대뜸 알 수 있는 것이 두 사람이 걸어가는 그 사이의 공간이 평소보다 넓다. 때로는 여자 노인 쪽이 1m쯤 앞서 걸어가는 일도 있는데 필시 화가 난 것일 게다. 그러면 두 노인이 걷는 속도도 전체적으로 평소보다 조금 빠르다. 그래도 늘 둘이 같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간다.
10년 가까운 세월을 봐 왔는데 근래엔 두 노인이 같이 걸어가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여자 노인이 안 보이는 일이 좀 잦아졌구나 싶더니 지난해 가을 무렵부터는 부쩍 등이 굽은 남자 노인이 혼자서 같은 길을 간다. 늘 둘이 같이 가다가 혼자 걸어가는 길. 보는 내가 다 쓸쓸하다.
생각해 보면 부부(영국이라면 같이 살되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동거인이나 동성 커플도 부부에 준하는 관계이지만 한국의 경우 아무래도 이성 부부의 형태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 같으니 부부라고 그냥 쓰기로 하고)란 꽤나 신기한 관계다. 둘은 원래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족 중 피를 나누지 않은 사이는 부부뿐이다. 생판 남이랑 만나 평생을 보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용감하게도. 그러니 그 용기가 다하거나 참을성이 사라지면 헤어질 수도 있는 사이고. 헤어지면 도로 남이 되는 사이고. 그런 두 사람이 만나서 같이 살고 같이 늙어 가는 거다. 꽤나 감사하고 조심해야 할 관계라는 느낌이 들지 않나.
말로는 제일 중요한 것이 부부지간이고 늙어 서로의 곁에 남는 것도 배우자뿐이라고들 하지만 부부 사이는 둘이 만났기 때문에 부수적으로 생겨난 것이되 무시하거나 좋다고만은 할 수 없는 다른 관계들에 의해 참 많이도 휘둘린다. 내가 선택한 건 오로지 저 사람 하나였던 건데 그의 가족이 와장창 딸려 왔더라, 아니면 상대방의 가족 안으로 후루룩 끌려갔더라 이런 상황. 저 사람과 살기로 하면서 원한 건 아내(또는 남편)라는 역할이었을 뿐인데 정신 차리고 봤더니 덕분에 해내야만 할 역할이 며느리·동서·올케, 심지어 조카며느리 등등(또는 그에 해당하는 남자 쪽 역할) 너무 많고 버거워 아내(또는 남편) 노릇을 확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 상태. 설 동안 그런 마음이었던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연휴라지만 쉬지 못하고 막히는 길을 오래 오가고, 불편한 자리에서 불편한 이야기를 듣고,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거나 돌아가신 지 오래인 조상님들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손에 익지 않은 가사 노동을 하는 것들. 이 모든 게 둘이 좋아서 같이 재밌게 한세상 잘 보내자고 결심했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돼 버린 것 아니던가. 그런데 그 때문에 상처를 받고 그로 인해 얻은 스트레스나 마음의 상처를 서로에게 배설해 버린다. 그러고는 둘 사이가 마구 나빠진다. 이거 뭔가 앞뒤가 바뀐 거 아닌가. 진정 중요한 것은 둘이 잘 살아가는 것이라면 말이다.
즐겁고 신나야 할 명절이로되 몸과 마음이 아주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을 수도 있겠다. 결혼을 두 집안의 결합으로 봐 왔던 한국 사회에서 그 복잡한 관계의 그물에서 단숨에 벗어나기란 사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부부의 본질은 엄연히 두 개인의 만남이다. 따지고 보면 집안이라는 것도 여러 부부 관계의 확장이고. 그러니 서로의 집안 때문에 부부 관계가 상하기보다는 집안이 부부 관계를 응원하도록 변해 가는 게 사리에 맞을 것이다. 결국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동네 가게를 같이 오가는 부부 아니겠는가. 때로는 손이라도 잡고 가면 더 좋을 것이다.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