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들은 상대의 소리만으로 감정·분위기·공간 특징까지 파악
말소리엔 마음이 스미기 때문.. 선거 있는 올해, 진심을 듣고 싶다
"양성입니다, 조직 검사 결과가."
의사 선생님이 모니터를 보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잔뜩 긴장하고 들어선지 그리 들렸다. 갑상선 종양 조직검사를 받았다. 초음파 검사를 했더니 특이하게 생긴 8㎜ 크기 종양이 나왔다. 암일지 모른다고 했다.
'양성'이란 말을 들은 순간, 한센씨병 환우들을 취재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양성 판정받은 환우들은 소록도에 격리돼 치료받고, 음성 판정받은 분들은 '음성나환자촌'이라고도 부르는 마을에 모여 산다. 에이치아이브이(HIV) 즉 에이즈 검사에서 '양성'이면 에이즈 환자라고 들은 기억도 났다.
암이 흔하다더니, 내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태연한 척했다. 따라온 아내 눈길도 애써 피했다. 의사 선생님은 모니터를 계속 살피면서 혼잣말했다. "양성이네요, 양성." 수술하자면 어쩌지? 깨끗이 나을 수 있을까? 이 생각 저 생각 차올라 말문이 막혔다. 10초쯤 흘렀을까. 내 귀를 의심했다. "암은 아니고요." 아니, 양성이라 해놓고 암이 아니라니? 의사선생님은 놀란 나를 흘낏 보며, 또박또박 발음했다. "악성이 아니고 양성입니다. 양성!"
종양은 음성 (陰性·negative), 양성(陽性·positive)으로 나누지 않고, 악성(惡性·malignant), 양성(良性·benignant)으로 나눈다는 것을 모르고, 양성(良性)을 양성(陽性)으로 들은 것이다. 의사선생님은 평소 말수가 적긴 했지만, 그 좋은 설명을 왜 그리 딱딱하게 했을까. 웃으면서 "양성이네요" 했다면, 뜻을 정확히 모르고도, 금방 알아챌 수 있었을 텐데.
말소리에는 마음이 스미기 마련이다. '고마워'라고 말할 때, 고마운 정도에 따라 말투가 달라진다.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는 속담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같은 '아'를 해도 다 다르다. 같은 글자라도 담긴 마음에 따라 달리 소리 난다. 의미의 미묘한 차이도 생긴다. 대학 다니는 착한 딸이, 겨울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해서 100만원 벌었다고 하자. "엄마, 나 100만원 벌었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때 '100만원'과, 어느 못난 금수저 아들이 용돈 투정하며 "아빠, 100만원 갖고 뭘 해?" 할 때 '100만원'은 뉘앙스가 다르다. 전자는 큰돈이란 뿌듯한 소리고, 후자는 푼돈이란 볼멘소리다.
중학교 3학년 때다. 영어 시간에 갑자기 배가 뒤틀렸다. 배를 움켜쥐고 선생님 앞에 나갔다. 우는소리로 배가 아파 화장실 가야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서 갔다 오라고 했다. 근심 가득한 그분의 나직한 음성이 아직 내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수업이 끝날 무렵, 한 친구가 건들거리며 나가더니, 화장실 가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손을 높이 쳐들었다 머리를 쥐어박고는 야단쳤다. "들어가 앉아 있어!" 건성으로 하는 말투라서 믿기지 않았나 보다.
사람들은 상대방 소리를 자신만의 필터로 듣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다. 영국의 소리 전문가 줄리언 트레저(Treasure) 박사 견해다. 성우 안지환은 전화 목소리를 들으면 상대방이 서서 말하는지, 앉아서 말하는지, 어떤 자세로 받는지 다 안단다. 윗사람에게 말할 때는 고개 쳐들고 하는 소리가 나오고, 아랫사람에게 말할 때는 고개 숙이고 하는 소리가 나온다고도 한다. 소리에 예민해지면 그만큼 많은 의미를 알아챈다.
같은 말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한 사람 옆에 두고 속삭이는 말과, 여러 사람 앞에 두고 하는 말, 수십 수백 명을 상대로 하는 연설은 소리의 높낮이, 빠르기, 셈여림이 다 다르다. 좁은 공간과 큰 공간은 소리 울림이 차이 난다. 말소리에는 감정뿐 아니라 분위기, 공간의 크기도 담겨 있다. 뛰어난 성우들은 소리만으로 계절, 무대, 의상의 느낌까지 표현해 낸다. 내게는 라디오 PD로 30년 동안 별별 라디오 프로그램 만든 뒤 얻은 게 하나 있다. 소리만으로도 많은 것을 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요즘 말의 글자 뜻과 전혀 다른 의미의 소리를 너무 자주, 많이 듣는다. 죄송합니다. 모릅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영혼은커녕 마음도 없는 소리다. 그 말들 듣고 '그래, 정말 몰랐구나'라고 고개 끄덕인 사람 있었을까. '저런, 기억이 나지 않나 보네'라고 안타까워한 사람 있었을까. 남들이 자기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까 생각했다면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선거가 치러지는 올해, 마음에 없는 말 많이들 할 게다. 믿기는 말을 듣고 싶다. 말을 한다는 것은 마음을 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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