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T 붕괴 시 한국도 재고해야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거부 시 미군을 빼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으로 이 같은 의구심이 훨씬 커졌다. 대놓고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주한미군은 북한 공격 시 미국의 자동 개입을 보장하는 인계철선, 즉 인간방패나 다름없는 존재다. 트럼프의 공약은 그래서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트럼프는 한반도뿐 아니라 여차하면 유럽 주둔 미군도 뺄 태세다. 사람 심리는 매일반이라 독일·이탈리아 등 핵무기 없는 유럽 나라도 우리와 똑같은 고민에 빠졌다. “러시아가 쳐들어오면 미국이 과연 지켜줄까”라는 우려다. “걱정하지 말라”고 미국은 큰소리치지만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여간 켕기는 게 아니다.
특히 유럽 내 미군이 가장 많은 독일에서 동요가 크다. 그래서 나온 게 ‘독자적 핵무장론’이다. “스스로 지킬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트럼프 당선 직후인 지난해 말부터 독일의 주류 언론과 정치권에서 불붙기 시작해 갈수록 힘을 얻는 양상이다.
미국 핵우산에 대한 유럽의 불신은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1960년대 유럽의 정치 거목 중에는 미국을 못 미더워하는 이들이 적잖았다. 대표적 인물이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었다. 그는 61년 독자적 핵개발을 말리는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을 만나 이렇게 일갈한다. “미국은 자신의 영토가 직접 위협을 받을 때만 핵무기를 쓸 것이라는 게 내 판단”이라고. 이런 소신으로 드골은 프랑스를 핵보유국으로 만든다.
세계 최고의 기술국 독일이 몇 달 내에 핵폭탄을 만들 것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물론 기술이 다는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패망으로 군사대국화에 반대하는 여론이 우선 문제다. 더불어 핵확산금지조약(NPT)이란 국제 규범을 어떻게 피하느냐도 넘어야 할 산이다.
그래서 독일 내 핵무장론자들이 꾀를 냈다. 독자적으로 핵폭탄을 개발하는 대신 유럽(EU) 차원에서 핵무장을 하자는 전략이다. 이미 생산된 프랑스의 핵폭탄을 독일·이탈리아 등에 배치한 뒤 ‘EU 총사령부’와 같은 기구를 신설해 여기서 관리하자는 것이다. 이럴 경우 러시아가 공격해 와도 EU 총사령부 관리 하의 핵폭탄으로 얼마든지 보복할 수 있다.
언뜻 보면 묘수일지 모른다. 하지만 뜯어보면 EU 회원국을 위한 편법이다. NPT의 근본 목적은 핵무기 확산 방지다. 이 전략은 결국 EU라는 틀을 이용해 핵무기를 공유하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가 “기존 핵무기로는 자국 방어밖에 못한다”고 나오면 독일이 돈을 대고 추가로 원자폭탄을 만들어 EU 관리 하에 둘 가능성이 짙다. 그러니 독일에서 EU 핵무장론이 대두되고 있음은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우리가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EU 핵무장이 추진된다면 NPT 체제에 금이 간다는 점이다.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을 반대하는 핵심 논리 중 하나는 원폭 개발 시 쏟아질 국제적 제재를 어떻게 감당할 거냐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 등 유럽국가가 EU라는 틀을 활용해 사실상 핵무장에 나선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렇다고 우리도 핵무기를 개발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독일처럼 새로운 관점에서 핵무장의 손익을 따져야 할 만큼 상황이 격변하고 있음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가운데 14일(현지시간)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간 정상회담이 열린다. 여기서 유럽 주둔 미군 문제와 독일의 핵무장 얘기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아무리 탄핵으로 얼이 빠져도 이런 중대사가 어떻게 전개될지 맥을 놓쳐서는 안 된다. EU의 핵무장이 이뤄질지, 그럴 경우 NPT 체제가 어떻게 굴러갈지 등등 깨알같이 들여다볼 일이다. 이와 관련, “결론이 어떻게 나든 독일 내 핵무장론의 등장이 미군 철수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분석은 곱씹어볼 대목이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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