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06.12 김대식 KAIST 전기 및 전자과 교수)
130년 된 자동차 산업을 본질적으로 혁신하겠다는 테슬라 자동차, 화성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
우주선을 개발 중인 스페이스 X, 그리고 웬만한 항공기보다 빠른 기차를 개발하겠다는 하이퍼루프.
이 세 회사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모두 이 회사들의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구상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그런 그가 얼마전 트위터에 재미있는 내용을 하나 올렸다.
우주선에대한 이야기도, 인공지능 이야기도 아니었다. 드디어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부조리적 휴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인생에 새로운 목표가 생기면 마치 배고픈 맹수같이 성공할 때까지 절대 놓지 않는다는 머스크.
왜 그가 인생엔 결국 목표도,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1950년대식 실존주의 책에 열광하는 것일까?
한 그루의 나무 옆에서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곤. 그들은 무엇을 기다리는가? 아니, 왜 무엇을 기다리는가?
무엇을 기다리는지 자신 스스로도 모르기에, 기다림 그 자체가 이들의 존재 이유이자 정당화가 된다.
아일랜드 출신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사뮈엘 베케트의 대작 《고도를 기다리며》의 내용이다.
베케트는 젊은 시절, 역시 아일랜드 출신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의 비서로 일하기도 했다.
조이스의 마지막 작품인 《피니건의 경야》를 옆에서 지켜본 베케트.
책을 거의 완성한 조이스는 책을 마무리할 멋진 마지막 단어를 찾고 있었다.
20세기 최고의 언어 마법사로 불리던 제임스 조이스. 그의 마지막 작품의 마지막 단어. 베케트는 기다린다.
마치 에스트라곤과 블라디미르가 의미 없는 인생에 드디어 의미와 행복과 깨달음을 가져다 줄지도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듯, 베케트는 조이스의 마지막 단어를 기다렸는지 도 모른다.
하지만 조이스가 찾은 단어는 뜻밖이었다.
영어에서 가장 단순하고 보편적인 ‘the’. 《피니건의 경야》는 ‘the’라는 무의미한 단어로 끝난다.
하지만 그 무의미한 단어는 책을 다시 처음부터 읽을 수 있게 해준다.
같은 책을 다시 한번 읽지만, 이미 한번 읽은 책이기에, 책을 읽는 자는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다.
강도, 사람도 항상 변하기에,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던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같이,
《피니건의 경야》는 영원히 반복해서 읽을 수 있으면서도, 똑같이 두 번은 읽을 수 없는 책이다.
결국 우리 모두가 기다리는 우리만의 ‘고도’ 역시 이런 무한의 반복을 가능케 하는
무의미한 기다림일 수 있다.
하지만, 기다림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기다리고 있는 우리.
이것이야말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영원한 조건이자 인류의 위대함인지도 모른다.
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케트/ 오증자/ 민음사/ 2000/ 175 p
808-ㅅ374ㅁ-43=2/ [정독]어문학족보실(2동1층)/ [강서]3층 어문학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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