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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의 종횡무진 인문학] 고구려가 웅비하던 초원? 민족주의 버리고 '몽골'을 보라

바람아님 2017. 4. 1. 15:52

(조선일보 2017.04.01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


바트트루 '20세기 한국 몽골 관계사'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

오늘은 결론부터 적는다. 

'20세기 한국 몽골 관계사'(KM미디어 刊)는 몽골과 시베리아에 관심을 갖는 한국 시민들을 위한 

최적의 교과서다. 

20세기 한국과 몽골 두 나라 관계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연구해온 자미얀 바트트루 몽골국립대 교수

(국제관계학)의 책이다. 이 책과 김호동의 '아틀라스 유라시아사'(소나무 刊)

그리고 강인욱의 '유라시아 역사기행'(민음사 刊)을 읽는다면 여러분은 틀리지 않은 길로 들어선 것이다.

딱딱한 제목과 투박한 장정 때문에 이 책의 장점과 매력이 독자들에게 잘 어필되지 않는 것 같은 

안타까움에, 오늘은 이런 방식으로 글을 시작해보았다.


몽골과 시베리아에 로망을 품거나 사업을 꿈꾸는 분이 한국에 많다. 이런 분들은 서점에서 '몽골' '시베리아' 

또는 '유라시아'라는 키워드로 책을 찾을 것이다. 그러면 고급 종이에 올 컬러 사진이 실린 책들이 주르륵 검색될 터이다. 

이런 책들은 대개 '고구려가 웅비하던 몽골 초원'이라든가, '한민족의 시원 시베리아'라는 식의 캐치프레이즈를 달고 있다.


'20세기 한국 몽골 관계사''20세기 한국 몽골 관계사'

바트트루 지음/ 현대몽골연구원 옮김

KM미디어/ 2011년


강연을 할 때마다, 이런 책의 독자를 최소한 한두 분은 접하게 된다. 

그때마다 "여러분이 읽은 책에 적힌 내용 가운데 상당수는 학술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이며, 

따라서 주류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 

그러면 이분들은 낙담하거나 화를 낸다. 

하지만 더 낙담하고 더 화가 나는 것은 필자다.


몽골 및 시베리아 지역과 이른바 '한국인' '한국 문화' 사이에 일정 정도의 연관성이 확인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조상이 이들 지역에서 활약했다거나 하는 주장은 상당히 가감해서 들어야 한다. 

또 21세기의 우리가 몽골과 시베리아에서 활동하기 위해서, '한국인'의 조상이 이 지역에서 활약했어야 할 당위성도 없다. 

조상이 활약하던 땅이니 후손인 우리가 다시 들어간다는 주장이 100년 전 세계 곳곳에서 기세를 떨쳤다. 

그리고 그런 주장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21세기를 사는 교양 있는 한국 시민이라면 그런 식으로 세계를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청(大淸)제국의 일부였다가 1911년에 한족의 중화민국으로부터 독립한 외몽골(북몽골), 

그리고 독립에 실패한 내몽골(남몽골). 

이들이 스스로의 역사와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몽골과 한반도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선입견을 버리고 겸허하게 듣는 것이 먼저다.




유목 제국 3000년을 망라하다


(조선일보 2016.01.18 이선민 선임기자)

국내 첫 중앙유라시아사 개설서 출간한 김호동 서울대 교수

초원 유목민·사막 오아시스인… 113장의 역사지도 등으로 정리


김호동 서울대 교수김호동 서울대 교수 /장련성 객원기자


"중앙유라시아의 동부뿐 아니라 흑해 등 서부까지 망라하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한반도와 관계가 깊었던 중국 북방의 유목민들에게 주로 관심을 갖습니다만, 

유라시아 초원의 서쪽에서도 중요한 사건이 많았기 때문에 균형 있게 다루려고 

노력했습니다."


중앙유라시아 연구의 권위자인 김호동(62·사진) 서울대 교수가 이 지역의 3000년 역사를

지도와 함께 정리한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사계절)를 펴냈다. 

흑해 북방의 초원에서 중국 동북의 싱안링(興安嶺) 산맥까지, 

시베리아 남부의 삼림지대에서 힌두쿠시 산맥과 티베트 고원에 이르는 방대한 

중앙유라시아는 초원의 유목민과 사막 오아시스인의 역사 공간이었다. 

뛰어난 기마술을 무기로 초원 지대를 종횡으로 누빈 유목 제국들은 아시아와 

유럽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수많은 종족과 국가가 명멸했고 근대에 

들어서는 초강대국 러시아와 중국에 분할 점령되는 바람에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국내 학자가 쓴 첫번째 중앙유라시아사 개설서인 이 책은 유라시아 초원 서부의 첫 유목국가 스키타이

(BC 7~BC 2세기)와 초원 동부에서 중국을 강타했던 흉노(BC 3세기~AD 2세기)의 흥망으로 시작한다. 

김 교수는 "유목국가와 주변 정주국가의 안정적 관계가 무너질 때 정치적 혼란과 대규모 민족 이동이 발생하는 

역사적 패턴이 이때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AD 6세기 중앙유라시아의 새 주인으로 등장한 투르크인들이 

유목제국 '돌궐(突厥)'과 '위구르'를 차례로 세워 당(唐)·동로마제국·페르시아와 패권을 겨루는 과정을 서술한다.


다음으로 AD 10~14세기 중앙유라시아 초원을 근거지로 역사상 가장 큰 육상(陸上) 제국을 건설했던 몽골의 흥기와 

붕괴 과정을 상세히 다룬다. 김 교수는 "몽골 제국이 거대한 통합을 통해 유례없는 문명 교류와 소통을 바탕으로 한 

'팍스 몽골리카(몽골의 평화)'를 이뤘다"고 높이 평가했다. 

종반부는 몽골 제국 멸망 이후의 역사다. 유목민족은 전반적 쇠퇴 속에서도 14세기 티무르 제국이 서아시아를 정복했고,

티베트 불교와 이슬람교의 적극적인 포교 활동으로 종교적 색채가 강화됐다. 

하지만 17세기 들어 몽골 전통에서 성장한 만주인이 세운 청나라와 러시아가 양쪽에서 밀고 들어오고 20세기에는 

중앙유라시아 전 지역이 사회주의 혁명에 휩싸이게 된다.


106개 항목, 113장의 역사지도와 관련 사진·연표·계보도로 된 책을 읽다 보면 중앙유라시아에 대한 한국인의 

평균 인식이 얼마나 낮은지 깨닫게 된다. 쿠샨·키다라·헤프탈·카라한·준가르 등 수많은 낯선 국명을 만나게 되고, 

고려와 직접 관련 있는 몽골 제국만 해도 상당 부분이 생소하다. 

그럴 때 저자가 본문 내용을 담아 직접 만든 역사 지도들이 이해를 돕는다. 

김호동 교수는 "유라시아 내륙 교통로의 중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이 지역의 역할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그 역사에 좀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김호동 지음/ 사계절/ 2016/ 271 p.
916-ㄱ988ㅇ=2/ [정독]인사자실(2동2층)
[강서]2층 인문사회자연과학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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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15.08.29)




[북리뷰] 유라시아 역사 기행


(조선일보 2015.08.08 윤예나 기자)

[북리뷰] 유라시아 역사 기행유라시아 역사 기행

강인욱 지음 | 민음사 | 332쪽 | 1만8000원

916-ㄱ257ㅇ=2/ [정독]인사자실(2동2층)

[강서]2층 인문사회자연과학실


경북 경주시 황남도 고분군에는 황남대총(신라 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추정)이 있다. 

그 근처 작은 고분에서 1973년 말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특별한 말(馬) 그림이 발견됐다. 

허연 입김을 내뿜고, 갈기를 휘날리며 하늘을 헤쳐나가는 역동적인 말 그림이다. 

이 그림 하나로 보잘것없었던 고분은 '천마총'이란 이름을 얻었고, 황남대총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게 됐다. 


이 책 저자는 동북아시아 북방지역 고고학을 연구하는 사학과 교수다. 

그는 천마도야말로 우리나라가 '초원의 아들'이라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라 말한다.

천마에 그려진 뿔과 90도로 접힌 왼쪽 앞발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알타이 파지릭 문부터 요동 지역의 선비 문화에 이르기까지 제사나 의식에 쓰는 말을 뿔로 장식하는 풍습이 있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댄다. 


"말 머리를 뿔로 장식하는 풍습은 초원 지역에서 시작됐다. 

초원 지역 고분에 부장된 말들은 대부분 머리에 뿔 장식을 했고, 제사나 의식에 사용된 말도 그러했다."


"서기 1~5세기에 남부 시베리아에 대형 목곽분을 만들었던 타쉬트의 문화에서는 이런 형태의 말 그림이 종종 발견된다. (...) 한편 기원전 5세기부터 서기 1세기까지 북방 유라시아 초원 일대에서는 한쪽 발이 접힌 사슴이 널리 유행했다."


신라 금관은 화려한 세공 기법으로 유명하다. 약 30년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신라 금관과 유사한 금관이 발견됐다. 

영락을 단 모습, 나무처럼 뻗은 금관대 형태가 한눈에 봐도 엇비슷했다. 

'황금 문화'가 찬란했던 흉노에 쫓겨 남하한 초원 민족이 남긴 물건이다.


서기 3세기쯤 랴오닝성 일대에 살던 모용 선비 유적에서도 비슷한 황금 머리 장식이 발견된다. 정작 유목민은 

황금을 머리띠로 두르거나 가죽 모자에 금박만 입힌 정도였지만, 정착 국가에선 이렇게 다양한 변용이 일어났다. 


북방 고고학을 공부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반도와 북방 유라시아 지역 간 교류의 역사를 조명했다. 

'우리는 기마 민족의 후예'라는 환상만 품을 일이 아니라, 이 문화 교류사가 척박한 환경을 딛고 강인하게 일궈낸 

동아시아 고대 문화의 한 축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가 말하는 초원은 양 떼가 한가로이 뛰노는 곳이 아니다. 혹독하게 추운 겨울은 길고, 여름은 짧으며, 강우량도 

적은 땅이다. 이런 환경을 극복해야 했던 초원 유목민은 흉노, 몽골 같은 강력한 국가를 세워 주변을 위협했다. 


저자는 "세계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는 실크로드 못지않게 세계 문명 교류에 영향을 준 

'초원 로드'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초원의 민족은 궁궐과 같은 유적을 남기진 않았다. 

그러나 전세계 교류의 중심에 서 있었다. 

세계 4대 문명과 다른 '제 5대 문명'으로까지 부를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은 그동안 일제 등 열강들의 입맛에 맞게 흉포하게, 혹은 낭만적으로 왜곡돼 온 북방 초원의 역사를 

고고학에 기반해 제대로 살펴 나간다.


책은 다섯 부로 구성됐다. 1, 2부를 통해 유라시아 초원의 역사, 동아시아 역사를 살펴본 뒤, 우리 역사에 남은 

'초원의 자취'를 시대에 따라 좇는다. 저자는 단백질 공급원이던 말이 재갈, 안장, 등자의 발명으로 인간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시점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유목민들은 말 위에서 자고 그 위에서 평생을 떠돌았다.


정착민은 이들을 '신의 저주가 내린 내시 같은 놈' '머리 사냥을 즐기는 야만적인 늑대'처럼 흉포한 이미지로 기록했다.

그래도 전차, 마구 등 첨단 무기를 개발하며 전쟁의 양상을 바꿨고, 문명 교류의 교착점 역할을 한 것이 모두 이들 

초원 유목민 힘이다. 


초원의 민족을 '오랑캐'로 불렀던 중국조차 이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조나라 무령왕, 진나라 시황제가 중앙을 제패할 때 그들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초원의 기술과 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초원을 무식하고 흉악한 이미지로 묘사했던 중국인의 왜곡된 시선은 유럽으로도 널리 전해졌다. 


3~5부에서는 신라, 고구려,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이어진 한반도와 초원의 교류를 조명했다. 

조선은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며 초원의 민족을 오랑캐로 멸시했다. 

책은 그런 중에도 이어진 초원과 우리의 교류 흔적을 끝까지 추적했다. 

가령 한글에도 초원 민족의 표음문자 전통이 반영됐다거나, 중국의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던 요리 

'만두'도 초원 민족의 탄수화물 보충용 음식이었다는 식이다. 


저자는 "북방 기원론이 일제 식민 통치의 산물이란 이유만으로 외면하고, 비현실적인 자생론에만 기대서는 

안 되기에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여러 관련 유물과 유적의 발굴 과정부터 학계의 다양한 쟁점에 이르기까지 일별할 수 있는 책이다.




몽골은 왜 고려를 멸망시키지 않았나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한몽관계사)

김운회 지음/ 역사의아침 위즈덤하우스/ 2015/ 237p

911.04-ㄱ861ㅁ/ [정독]인사자실(2동2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