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게임 戰場된 한반도
트럼프·시진핑 自國 국익 우선
한국 배제된 密約 없도록 해야
영국과 러시아가 19∼20세기 초에 중앙아시아 주도권을 두고 벌였던 패권 쟁탈전을 일컫는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이 21세기 한반도에서 주인공을 미국과 중국으로 바꾼 채 재연되고 있다. 최근 미·중 갈등이 심상치 않다. 문제의 심각성은 몇몇 이슈로 인한 일시적 갈등이 아니라, 기존 패권국과 빠르게 부상하는 신흥국 간의 구조적 충돌을 의미하는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진 것 아닌가 하는 점에 있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장은 2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를 통해 미·중 무력 충돌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리고 지난 500년 동안 패권국과 신흥국의 위치가 뒤바뀐 것은 16차례였으며, 이 중 12번이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소개했다.
이같이 미·중 전쟁 위기론까지 나오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의 첫 정상회담이 6∼7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다. ‘아메리카 퍼스트’와 ‘중국몽(夢)’ 간의 샅바 싸움이 될 이번 회담에서 최우선 의제 중 하나가 북핵(北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북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심지어 “중국이 돕는다면 중국에 아주 좋을 것이고, 그러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좋은 결과는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중국이 북핵 해결에 협조하지 않으면 무역 제재와 환율 조작국 지정 등 ‘무역 인센티브’로 중국을 압박할 것임을 경고한 것이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북핵 해법은 ‘중국을 통한 북한 압박’으로 정리됐음을 감지할 수 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노선은 북한이 핵·미사일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과 대화하지 않으면서, ‘세컨더리 보이콧’ 등을 활용해 북한에 대한 제재 강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그리고 최근 많이 거론됐던 군사적 옵션은 후순위로 밀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핵 도발이 임박할 경우에 불가피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는 ‘선제 타격’(preemptive strike)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지만, 사전에 북핵을 제거한다는 의미에서의 ‘예방 타격’(preventive strike)은 일단 우선순위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등 군 출신이 외교·안보팀을 장악하고 있기에 군사적 옵션이 강조될 것이란 추측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미 군부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실전 경험이 많은 미 군부는 대체로 개전에 부정적이라고 할 정도로 매우 신중하다. 오히려 이념적 지향이 강한 민간인 출신이 전쟁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2003년 이라크전 때도 군인 출신인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은 신중론을 폈으나, 민간인 출신인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국방장관이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군인 출신은 끝장을 보려고 하나, 민간인 출신은 적당히 종전하려는 경우가 많다.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의 저서 ‘직무유기’(Dereliction of Duty)에 ‘점진적 압박’은 잘못이라고 명시돼 있다. 군사 개입은 일단 결심하면 압도적 물리력으로 상대방을 완전 제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의 진짜 타깃은 북한 아닌 중국이란 분석도 있다. ‘중국을 통한 북한 압박’이 아니라, ‘북한을 겨냥한 중국 압박’이란 것이다. 어느 경우든 시 주석도 밀릴 수 없다. 올 11월로 예정된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산당 당장(黨章·당헌)에 ‘시진핑 사상’ 포함이 논의되고 있는 마당이라 더욱 그러하다.
미·중 대립이 본격화하면 한국은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가. 세 가지 길이 있다. 첫째는 ‘균형자(balancer)론’이다. 미·중 간에 균형을 유지하자는 것으로, 가장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균형자는 원한다고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럽 정치에서 영국과 같이, 세력 균형을 변경시킬 수 있는 독자적 힘이 있고 지리적으로 역외(offshore)에 위치해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지 않고 힘없이 중간에 낀 존재가 균형자를 자처할 경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나 벨기에 운명에 처할 공산이 크다. 두 번째는 제2의 홍콩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자존심은 물론, 자유민주적 가치와 질서도 포기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마지막은, 한·미 동맹 바탕 위에서 한·미·일 3각 공조 체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곧 열릴 미·중 정상회담을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대한민국이 배제된 채 한반도 운명이 논의·결정되는 제2의 얄타회담, 제2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한반도 운명은 우리 국민이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달렸다. 그만큼 다가오는 5월 9일 대선도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황성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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