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5.22 최보식 선임기자)
[北 탄도미사일의 미스터리… 조광래 항공우주연구원 원장]
"北 미사일은 80t급 엔진
발사 동영상 분석해보니 화염 몇 개 다발로 이뤄져
27t급 4개 묶었을 가능성"
"달 탐사 5년 앞당기는 공약, 도대체 누구 아이디어였는지…
명색이 전문가인 우리에게 한번도 문의한 적 없었다"
북한 김정은이 평양에서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KN-17)의 성공 자축연(自祝宴)을 벌일 때,
나는 대전 항공우주연구원에 갔다. 조광래(58) 항우연 원장은 회의실 전등을 끄고 동영상을 틀었다.
'한국형 발사체(로켓)'의 엔진 시험 장면이었다.
"로켓의 핵심은 엔진이다. 이 로켓에서 분출되는 화염의 추력(推力)이 75t에 해당된다.
영하 196℃ 액체산소와 석유가 연소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거다. 1초에 250kg을 태운다.
실제 비행에서 연소 시간은 134초다. 엔진 시험에선 여유를 둬 165초간 한다."
조광래 항우연 원장은
“올해 말 한국형 로켓을 조립하고,
내년 10월쯤 1차 시험 발사를 한다”고 말했다.
/신현종 기자
―발사 전까지 이런 엔진 시험을 몇 회나 하나?
"통산 200회 정도 한다.
10번쯤 시험하면 엔진 수명이 다한다.
최종 실험 때까지 엔진 17기가 든다.
2014년 말부터 시작했다.
초기에는 균일하게 안 타고 큰 진동과 함께
폭발하는 '연소 불안정 현상'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다.
이제 안정 상태에서 반복 시험하고 있다.
올해 말 로켓을 조립하고, 내년 10월쯤
1차 시험 발사를 할 것이다."
―우리 로켓 기술은 북한에 비해 20년 이상
뒤졌다는 평가인데?
"북한이 먼저 로켓 개발을 했고 계속 쏘아
올리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기술적 측면에서는 거의 격차가 없다."
―이번에 발사 성공한 북 미사일 '화성―12형'은 80t급 엔진이 장착된 것인데?
"발사 동영상을 세밀하게 분석해봤다. 발사대에서 이륙할 때 화염(火焰)을 보니 엔진 하나가 아닌 것 같았다.
몇 개의 화염 다발이 있었다. 이는 27t급 엔진 4개를 묶었을 가능성이 높다."
―80t급엔진이 아니고 27t급으로 보는 이유는?
"몇 년 전 북한 로켓 '은하 3호'의 잔해가 군산 앞바다에 떨어졌다.
당시 이를 건져냈는데 엔진 4개를 묶은 게 보였다.
27t급이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급(級) 엔진이 장착됐을 것으로 본다."
―국내 언론은 '80t급 엔진 시험 성공 두 달 만에 발사했다. 속도감 있게 진행했다.
이 신형 엔진 1기를 장착한 1단 로켓만으로 최대 5000여㎞를 날아갈 수 있는 능력을 과시했다'고 보도했는데?
"북한은 두 달 전 80t급 엔진 시험 성공을 공개했지만, 그 엔진을 장착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나는 아니라고 본다."
―아니라고 보는 근거는?
"엔진이 완성되고 두 달 만에 로켓으로 조립할 수 없다.
또 80t급 엔진 1기만을 사용해서는 언론 보도처럼 수직 각도(角度)로 2000km 이상 올라갈 수가 없다.
보조 엔진이 부착돼있다는 점에서도 북한 미사일은 최신 기술이 아니다.
로켓 비행의 유도 제어를 위해 보조 엔진을 쓰는 것은 과거 방식이다."
―과거의 방식이라는 뜻은?
"엔진 발전 과정에서 초기 방식이다. 엔진 하나로 로켓 전체를 움직이는 기술이 안 되니까 보조 엔진을 붙이는 거다.
보조 엔진을 쓰면 연료 효율이 떨어진다. 지금은 기술이 좋아져 주엔진 하나로만 이뤄져 있다."
―북한은 '대륙간 탄도미사일' 기술 수준에 거의 육박했다는 평가가 있다.
"무기 차원에서는 인정한다. 장거리를 못 날아가는 것도 아니다.
포니로 가든 그랜저로 가든 서울서 부산까지 가는 것은 가는 것이다.
다만 얼마나 무거운 탄두를 탑재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말하는 것이다."
―어쨌든 기술적으로 북한은 80t급 엔진에 성공했다. 우리가 시험하고 있는 건 75t급인데?
"75t급은 한국의 우주 개발에 맞춘 것이다. 로켓 발사 때 1단이 일본 영해가 아닌 공해 상에 떨어지게 하는 점도 감안했다.
물론 우리는 못 쏘아 올리고 있으니 할 말은 없다. 이제 고비를 다 넘었다. 1년 5개월의 시간만 주면 쏘아 올리게 된다."
―우리는 그동안 대체 무얼 했느냐고들 묻는다.
"우리는 대형 미사일을 개발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미국의 승인 없이는 미사일의 사거리조차 늘릴 수 없다.
국방에 관한 한 고체 연료를 쓰는 소형 미사일이나 크루즈 미사일을 갖췄다.
대응 전력으로는 이걸로 충분하다고 봤다. 로켓 기술 개발은 정부 사업 우선순위에서도 밀렸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북한의 '대포동 1호' 발사가 우리에게 첫 충격이 됐다. 1950년대 소련의 스푸트니크
충격으로 미국의 아폴로 계획이 나온 것처럼, '나로호' 계획은 대포동 1호의 충격으로 시작됐다는데?
"대포동 1호의 사거리가 2000㎞ 이상이었다. 우리 사회는 패닉에 빠졌다.
김대중 정부는 '5년 안에 장거리 로켓을 만들어라'며 항공우주연구원에 임무를 부여했다.
당시 우리는 액체연료 엔진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나로호 우주센터를 짓게 된 계기였다."
―나로호 발사는 두 번 실패하고 세 번 만에 성공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1단 로켓이 러시아제(製)였다.
2010년부터 한국형 로켓 개발 사업이 시작됐다. 올해 시험 발사하는 걸로 예정돼 있었는데?
"시험 발사는 원래 2018년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2012년 대선 당시 TV 토론회에서 박근혜 후보가 '달 착륙을 2025년에서 2020년으로 앞당기겠다.
2020년에는 달에서 태극기가 펄럭이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달 탐사' 공약에 맞춰 로켓 시험 발사 일정이 2017년으로 앞당겨진 것이다.
박 대통령 임기 내에서 한 번 쏘아 보려고 했던 거다."
―당초 '2025년 달 탐사' 계획은 언제 세워진 것인가?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다."
―박근혜 후보가 '2020년으로 앞당기겠다'고 공약했을 때 어떻게 받아들였나?
"당시 나는 '나로호 발사추진단장'이었다. 이미 두 번 실패했고 세 번째 발사가 연기됐을 때다.
TV에서 그 장면을 보고 놀랐다.
달 탐사 추진을 5년 앞당기겠다는 공약이 도대체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아무도 모른다.
기술자인 우리 쪽에 문의한 적 없었다. 정부 부처인 교육과학부와 얘기가 됐는지…."
―'달 탐사'는 박근혜 정부 국정 과제 140개 중 13번째로 올라가 있었는데?
"순서가 그렇게 돼 있었다. 연구기관으로서는 거기에 맞춰 한국형 발사체 조기 개발 계획을 짤 수밖에 없었다.
시험 발사를 1년 앞당겨야 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무리였다."
―그때는 가만 있다가 지금 와서 기술적 무리라고 하니, 변명처럼 들린다.
"그때도 항우연 기술자들은 '어렵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두 번의 나로호 발사 실패로 '실력이 없다' '열심히 안 한다'는 등 항우연은 비판의 표적이 됐다.
우주 계획에서 항우연의 발언권은 없다시피 했다.
정부는 항우연을 배제하고 몇몇 대기업에 '한국형 발사체 개발을 맡아달라'고 했다.
해당 기업들이 '로켓 개발 기술에 관한 한 그래도 항우연이 가장 많이 축적하고 있다'며 안 맡으려고 했다.
그렇게 되자 정부에서는 한국형 발사체 개발의 사업 책임자를 외부 인사에게 맡겼다.
그 책임자는 정부 방침대로 2017년 조기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사체 개발을 1년 앞당기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우리가 명색이 전문가인데 5년, 10년 앞을 못 내다보겠나. 우리의 기술 상황에서 어려웠다.
나는 지속적으로 일정 조정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그래서 작년 말에 연기 결론이 난 거다."
―한국형 발사체 개발에는 총 2조원이 드는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 '달 탐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우주 수송 기술(로켓 기술)이다."
―'2020년 달 탐사'는 가능한가?
"아직 우리에겐 달에 착륙할 능력이 없다. 남의 발사체(로켓)를 빌려서 할 수밖에 없다.
2025년에는 우리 로켓으로 달에 갈 수 있다."
―'달 탐사'를 위해 NASA(미항공우주국)와 접촉한 것으로 아는데?
"NASA에는 돈 받고 해주는 프로그램이 없다. 우주 기술을 돈으로 살 수가 없다. 탐사선은 우리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3만6천km 인공위성과는 통신해봤지만, 달과의 거리인 38만km 심(深)우주 통신을 해본 적이 없다.
또 우주 공간에서 최적의 경로를 찾아가는 유도 제어 기술도 부족하다. 이를 NASA에서 지원해주기로 했다.
대신 NASA 측은 탐사선에 달의 그림자 부분을 관측하는 센서를 탑재해달라고 요구했다.
작년 말에 이 협약이 체결됐다."
―한국형 발사체 개발에는 2조원이 들고, 별도로 '달 탐사' 예산은?
"1단계는 약 2000억원으로 책정됐고, 2단계 예산은 얼마가 될지 미정이다."
―1단계 소요 예산의 내역은?
"달 탐사선의 설계 제작 비용과 발사체를 빌리는 비용이다.
발사체를 한 번 빌리는 데만 700억~1000억원이 든다."
―'달 탐사' 예산은 야당에서 '박근혜 쪽지 예산'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모두 잘린 것으로 아는데?
"2015년 첫해에는 예산을 못 받았다. 작년에 410억원 중 200억원만 나왔다.
올해는 700억원이 나왔다. 예산 문제 때문에 '달 탐사' 추진도 늦어졌다."
―당시 유치원 보육 지원 논쟁이 벌어졌을 때다. 야당은 "유치원생들 점심도 못 주는데"라며 예산 승인을 거부했다.
"30여 년 전 김영삼 정부 시절 내가 '과학 로켓' 관련 예산을 위해 경제기획원을 찾아가니
사무관이 '지금 그거 할 때입니까. 임대주택 하나 짓는 게 낫지'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우주 공약은?
"내가 알기로는 우주에 대한 특별한 공약이 없었다."
―당시 야당은 달 탐사에 부정적이었으니, 문재인 정부는 그런 기조가 아닐까?
"새 정부에서 '달 탐사' 프로젝트를 공론화해 어떻게 할지를 결정해줘야 한다."
―천문학적 돈이 드니까, 지금 단계에서 손을 털거나 아니면 대통령이 나서서 끌고가야 하는데?
"우주 계획은 대통령 소관이다. 미국은 케네디 대통령이 달에 가자고 했고, 프랑스는 드골 대통령이 주창했다.
국가 최고지도자의 의사 결정에 달린 거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우리는 달에 가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쉬워서가 아니라 어렵기 때문이다.
지식과 평화에 대한 새로운 희망이 우주 공간에 존재한다.
1960년대가 가기 전에 우주비행사를 달에 착륙시키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킬 것"이라고 연설했다.
그 뒤 1969년 아폴로 11호가 그 임무를 완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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