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5.25 고성국 TV조선 객원해설위원)
보수는 죽었다.
박근혜 탄핵과 조기 대선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의 보수는 비장함도 처절함도 없이 썩은 등걸처럼 힘없이 쓰러져 버렸다.
보수는 죽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모두 강 건너 불 보듯 할 뿐이다.
그 와중에 자유한국당은 스스로 바퀴벌레당이 되고 낮술 먹는 집단이 됐다.
민망하고 창피하다. 한국당, 이들은 과연 보수의 자격이 있는가.
보수는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성찰적으로 고백하는 겸손함을 갖춰야 한다.
나라를 지켜왔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감당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품격을 내면화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현실에서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 그것도 아니면 차악이라도 찾아내려는 치열함이 있어야 한다.
'누가 세운 나란데, 어떻게 지킨 나란데'라는 격정이 마음 깊은 곳에서 불타고 있어야 한다.
어떤 소설가는 보수를 '배가 뒤집히지 않게 하는 바닥짐'이라고 했다.
그 바닥짐이 되겠다는 각오가 없는 이, 변화에 둔감한 기득권 세력, 명예도 자긍심도 없이 작은 이해관계에 매몰된
완고한 이기주의자들은 보수가 아니라 수구다. 한국당은 과연 보수인가 수구인가.
무릇 보수가 보수이려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전략과 비전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식민지로 전락할 때보다 더 긴박하게 요동치는 한반도 주변 정세 속에서 한국당은 과연 어떤 국가 방략을 갖고 있는가.
21세기 탈근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당은 과연 어떤 발전 전략을 갖고 있는가.
근·현대 갈등 구조가 탄핵 정국으로 응축 폭발한 상황에서 한국당은 국가 통합을 위해 과연 어떤 정치적 비전과 행동을
준비하고 있는가.
한국당이 보수인가 수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다시 던지는 이유다.
대선 참패보다 더 참담한 것은 대선 후 한국당이 보여주고 있는 지리멸렬하고도 천박한 모습이다.
대통령이 탄핵 구속되고 대선에 참패한 상황에서도 반성과 다짐이 아니라 당권을 둘러싼 이전투구만을 벌이는
한국당에 과연 보수의 미래를 맡길 수 있겠는가.
문재인 정부의 진보 개혁 드라이브는 당분간 국민적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4대강 감사에서 보듯
문재인 정부의 개혁은 '수구 기득권 세력의 구태와 무능 청산'이란 프레임으로 포장돼 추진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시절을 견뎌내려면 '나부터 죽겠다'는 각오가 서 있어야 한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성경 구절처럼
한국당은 먼저 철저히 죽어야 한다. 그 죽음 위에 새로운 보수의 꽃을 피워야 한다.
대한민국의 보수와 한국당은 무엇보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라는 자기 존재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성찰로부터 정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국민은 보수에 정쟁이 아니라 정치를 요구하고 있다.
보수에 걸맞은 책임 정치, 품격 정치, 정도 정치, 젊고 강한 보수 정치를 열망한다.
한국당이 이 같은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는 길은 스스로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대선 후보와 당 지도부, 당 중진부터 백의종군함으로써 새로운 보수로 거듭나라는 국민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사즉생(死則生), 바로 이것이 한국당이 새로운 보수의 길을 열어갈 출발점이다.
블로그내 같이 읽을 거리 :
[위기의 대한민국… '보수의 길'을 묻다]
[1]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 "국민보다 수준이 훨씬 낮은 사이비 保守 정치의 실패" [2]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 : "정치가 '私的 사업' 전락해 국가표류…이익보다 가치 따지는 新보수로 가야" [3] 복거일·소설가 : "지도자 잘못 뽑은 보수, 성찰할 때… 보수가 지켜야할 가치 훼손은 안돼" [4] 강원택 서울대 교수: "'국가가 끌면 시민은 따라야' 思考 버리고 비정규직 등 청년 고민도 껴안는 保守로" [5] 소설가 이문열 :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 새롭게 태어나 힘들여 자라길 [6] 김호기 연세대 교수 : "市場보수·安保보수를 넘어서는 혁신 보여줘야 위기 탈출" [7] 박지향 서울대 교수 : "따뜻하고 도덕적 보수로 거듭나 양극화·청년층 좌절 치유해야" [8] 유종호·前 예술원 회장 : "굴욕감에 광장을 가득 채운 분노… 이젠 理性의 민주주의 작동할 때" [9]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 "권위주의 아닌 민주적 보수로 내각제·완전국민경선 도입을" [10·끝]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 : "조선시대 史官은 임금 감시한 'CCTV'… '권력의 맛' 경계한 선비정신 되새겨야" |
[중앙시평] |
21세기 한반도의 지정학(2016.1203) 중국의 속셈(2016.0220) |
블로그 내 보수.진보 논쟁을 위한 고전 : |
美독립과 佛혁명의 격동기 속에서 보수·진보 사상적 기준 제시한 버크·페인의 논쟁 추적 에드먼드 버크와 토머스 페인의 위대한 논쟁|유벌 레빈 지음 조미현 옮김|에코리브르|352쪽|1만8500원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 에드먼드 버크 지음|이태숙 옮김|한길사|396쪽|2만8000원 926.05-ㅂ748ㅍ/ [정독]인사자실(2동2층) 상식, 인권/ 토머스 페인 지음 박홍규 옮김/ 필맥/ 2004/ 435p 926.05-ㅍ36ㅅ/ [정독]인사자실(2동2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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