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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유형진] B사감 마음의 소유자들

바람아님 2017. 6. 12. 09:45
국민일보 2017.06.11. 17:18

외출 준비를 할 때, 선크림을 바르거나 눈썹이라도 정리하려면 남편이 이런 말을 한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그렇게 꾸미고 나가? 내가 보기엔 그게 그건데.” 남자는 세수하고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 말리고, 로션 하나 바르고 나면 외출 준비가 끝난다. 하지만 나는 위 아래 옷 색의 매치, 질감과 소재가 맞는지 고민하고, 웨이브 머리를 말리고, 시간이 없어 공들인 메이크업을 못하겠다 싶어서 간단히 하고 나가려는데 저런 말을 하면 부아가 치민다.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여성의 패션과 화장이 꼭 ‘바깥에서 만날 타자(결국 이성)’에게 관심 받으려는 것이라는 남성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내가 다이어트를 하고 싶고, 패션에 신경 쓰고, 피부 관리를 하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다. 내 옷맵시가 마음에 들고, 내 몸이 건강하면 내가 좋기 때문이다. 내 패션을 남들이 좋아하면 부차적으로 기쁠 뿐. 패션이란 예의와 자기표현이기 때문에 상갓집이나 잔치에 갈 때 ‘자기표현’이 지나쳐서는 곤란하겠지만. 멋지게 입고 친구를 만나 시간을 보내는 일이나, 영화제 시상식 자리에 배우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나오는 것을 보는 것은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다.


핑크색, 레이스 좋아하고 짧은 치마나 목선이 파인 옷들을 좋아한다고 하면 거부감을 보이는 이들이 간혹 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여성스러운 것’은 남성들에게 ‘목표물’이 되어 ‘시선 강간’의 재물로 비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여중, 여고를 다녔는데 그때 여성스러움을 싫어하고 쇼트 컷 머리를 고수하며 ‘소년답게’ 하고 다니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 또한 그랬다. 십대 소녀들의 그 심리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 봤다. 물론 자기 개성일 수도 있지만. 소녀들이 성인 남성들의 시선 폭력에서 자유롭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마음껏 자기표현을 하며 개성을 발산할 시기의 소녀들이 왜 그렇게 경직될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성폭력 사건을 말할 때도 그렇다. 성폭력 사건은 여성의 옷차림이 문제가 아니라 가해 남성의 제어 못하는 충동이 문제다. 제발 모두들, 여학교 B사감처럼 여성들의 복장 단속을 안 했으면 좋겠다.


글=유형진(시인), 삽화=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