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중앙시평] 사드 배치 지연, 바람직한가

바람아님 2017. 6. 16. 10:28
중앙일보 2017.06.15. 03:03

배치 지연은 득보다 실 많아 그 청구서 비용은 일자리
수십만 개와 맞먹을 수도 레이더 반경 축소 등
우리 안을 만들어 미·중과 적극 협상해야

김병연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관한 국내외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는 한·미 동맹 차원의 약속을 근본적으로 바꿀 의도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사드 부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받게 함으로써 이미 국내에 반입된 나머지 4기의 배치를 지연시키고 있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철회할지 모른다는 기대를 내심 비치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모호함은 어떤 이유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는 과연 합당한 전략인가.

우리 정부가 사드 추가 배치를 연기한 이유는 세 가지로 추측된다. 첫째는 국내적 이유다. 지난 정부가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급작스럽게 사드 배치를 결정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와 국회 동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엔 정책 결정 과정에서 투명성과 소통의 올바른 선례를 만든다는 목적과 아울러 이전 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려는 정치적 동기도 깔려 있을 수 있다.


둘째는 미·중 관계 변화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초기에 다수의 국제관계 전문가는 미국 정부가 조만간 중국 정부와 심각한 갈등을 빚을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미국이 환율과 무역제재로 중국을 압박해 양국 간 큰 마찰이 생기게 되면 사드 문제는 상대적으로 사소한 쟁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였다. 즉 국제 환경이 바뀌면 쉽게 풀릴 수 있는 사드 문제를 서둘러 결정하는 것은 전략상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셋째는 중국의 대북제재 인센티브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대북제재가 성공하려면 중국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만약 사드 배치가 완료된다면 중국은 이에 반발해 대북제재에서 한 발을 뺄 수 있다. 대북제재는 실제적으로 무력화되고 핵 문제에 관한 북한의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유엔은 대북제재를 강화하려 하겠지만 3자 제재나 금융제재로 북한에 큰 타격을 주기는 어렵다. 이 상태가 되면 한국이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독립적으로 움직일 공간은 거의 없어진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난다면 남북 관계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는 이전 보수 정부와 구별되는 성과를 보이기 어려워진다는 논리다.


현시점에서 평가할 때 이러한 전략은 득보다 실이 많다. 먼저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는 것은 결국 국내의 문제다. 미국은 이를 이해한다고 하지만 의구심을 떨치지 못할 것이고 중국은 기대를 걸다 더 크게 실망할 수 있다. 결국 결정을 미룸으로써 잃게 되는 비용이 생긴다는 의미다. 그 기회비용은 상황 전개에 따라 매우 커질 수도 있다.

사드 배치를 지연시켜 미·중의 다툼 속에 문제 자체가 없어지도록 만들 수 있다는 기대는 접는 것이 좋아 보인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런 조짐이 없다. 오히려 북핵 문제에 있어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협력이 두드러졌고 사드는 그와 별도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돼 버렸다. 물론 미·중 사이에 앞으로 일어날 갈등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그 시기까지 사드 배치 결정을 미룬다면 한·미 동맹의 균열에서 오는 위기가 더 커질 수 있다.

사드 배치를 지연시킴으로써 우리가 거둘 실익은 중국의 대북제재 인센티브를 유지시키는 정도다. 그러나 유엔 제재의 성격 변화 때문에 그 실익은 크지 않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채택된 유엔 안보리의 2270호 제재는 북한의 무연탄 수출 중 민생용은 예외로 인정했다. 그 결과 민생용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중국 정부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컸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채택된 2321호 제재는 무연탄 수출물량과 금액의 상한선을 설정한 객관적 제재로 중국 정부의 주관성이 개입될 여지가 작다. 즉 사드 배치 시기에 따라 중국의 대북제재 강도가 달라질 가능성은 작다.


정부는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안을 만들어 미·중과 적극 협상해야 한다. 최선의 안은 우리의 이익을 지키면서 미국과 중국이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먼저 중국 입장에서는 사드 레이더 반경에 중국이 포함되지 않는 방어용 목적의 사드 배치는 반대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미국으로선 사드 레이더의 제한적 운용에 부담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북한 비핵화 가능성은 더 멀어진다는 논리로 미국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했듯이 사드를 우리가 구입해 레이더 운용을 제한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 인한 경제적 부담은 중국의 보복을 포함한 한·중 갈등 비용보다 적을 것이다.


이미 반입된 사드의 배치를 대안 없이 미루기만 하는 것은 우리 국익에 손해다. 지금과 같이 모호한 태도는 준비되지 못한 정부라는 인상만 준다. 이 도박이 실패할 때 날아들 청구서 금액은 일자리 수십만 개를 날릴 만큼 클 수도 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