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토론 과정의 산물.. 대통령이 명령할 사안 아냐
타인의 독주는 전횡이고 자신의 독주는 결단인가
문재인 대통령의 탈(脫)원전 행보가 결연하다. 하지만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 논란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공론 조사에 대한 대통령의 일관된 의지다. 정부의 법적 책임을 분명히 하면서도 영구 중단이든 공사 재개든 공론 조사 결과를 따르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공론 조사가 "사회적 갈등 해결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까지 역설했다. 정부 여당은 대통령의 행보를 한국 민주주의의 신기원이라고 상찬(賞讚)한다.
신고리 5·6호기 논쟁은 이미 고도로 정치화했다. 진영 논리와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힌 데다 가치관 충돌까지 겹쳐 논란이 확산일로다. 공론화위가 공론 조사 틀을 설계하고 시민사회가 국가 현안을 결정한다는 그림은 한마디로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역습'을 상징한다. 이는 청와대와 내각에 다수 시민운동가가 진입한 사실만을 뜻하지 않는다. 국가가 모든 것을 결정했던 국가 중심주의를 넘어 시민사회의 국정 참여를 극대화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시민사회의 자유 토론과 숙고(熟考)를 국정 동력으로 삼는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의 비전이다.
이는 사이비 여왕 같은 행태로 민주공화국을 흔든 박근혜식 권위주의에 대한 반작용이 아닐 수 없다. 시대착오적인 국가 중심주의의 화신이었던 박근혜 정부와 너무나도 선명하게 대조된다. 문재인 정부가 매사에 촛불 정신을 강조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문재인 정부의 전신(前身)인 노무현 정부가 참여정부를 자임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발전국가와 재벌 중심의 시장이 왜소화시킨 시민사회를 강화해 국가·시민사회·시장이 상호 견제하며 협력하는 참여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종종 국회를 우회해 여론에 직접 호소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대의민주제의 한계를 넘어 직접민주제를 가동하겠다는 의도다. 문 대통령이 억압적인 발전국가와 격렬히 싸웠던 시민사회의 인권 변호사였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한국 시민사회의 역동성이야말로 문재인 정부의 존재 근거인 것이다. 이는 시민 참여 확대로 대의민주제를 보완하려는 현대 정치의 흐름과도 맞물린다. 공론으로 다져진 숙의 민주주의야말로 현대 민주주의의 미래 비전이다.
그러나 신고리 5·6호기 공사 전격 중단은 이런 아름다운 그림을 배반한다. 공정률 28%에 건설 중단에 따른 피해 규모가 수조원대로 추산되는 공사를 임시 중단하는 결정은 사회적 숙의의 결과이기는커녕 문 대통령의 일방통행에 다름 아니었다. 공사 중단이 '민주적 절차를 중시하는 조치'라는 대통령의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자체가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국가에너지위원회라는 제도적 틀 위에서 10여년 넘게 진행된 사회적 토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수십년 시행착오를 거쳐 다듬어진 원전 정책은 역대 보수·진보 정부의 이념적 차이를 넘어선 것이었다. 국가 에너지 대계의 정책적 연속성을 확보했음은 물론이다.
문 대통령식 탈원전 드라이브의 최대 약점은 졸속과 일방주의다. 그가 그토록 강조하는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을 무너뜨리면서까지 과속하고 있다. 대통령 주장대로 탈원전이 세계적 추세일 수도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탈원전의 당위성은 호소력이 매우 크다. 하지만 원전의 경제성과 불가피성을 옹호하는 논리도 강력한 게 사실이다. 따라서 탈원전은 대통령이 수직적으로 명령해야 할 사안이 결코 아니다. 시민사회에서 먼저 수평적으로 토론되고 검증되어야 할 논제다. 탈원전이야말로 사회적 숙려(熟慮)와 시민적 공감대가 필수적인 이슈인 것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탈원전을 기정사실화함으로써 국가의 결정을 시민사회에 강요하는 치명적 모순을 범하고 있다. 자신의 존재 근거를 흔들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자식이며 촛불은 성숙한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촛불 방식의 숙의 민주주의는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인 것이다. 나라의 앞날과 민생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탈원전 정책은 시민사회의 전면적 토론에 부쳐져야 한다. 신고리 5·6호 공론화위가 그 출발점이 되어야 마땅하다. 공사부터 중단할 일은 전혀 아니다. 3개월 아니라 3년이 걸릴지라도 탈원전의 정당성 여부를 숙의하는 만민공동회로 확장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모델로 삼는 독일과 스위스의 탈원전도 30년의 사회적 토의 과정을 거쳤다. 타인의 독주(獨走)는 전횡(專橫)이지만 자신의 독주는 결단이라는 대통령의 독선은 숙의 민주주의와 충돌한다. 제대로 된 시민적 공론과 함께 가야 국가 백년대계가 우뚝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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