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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 칼럼] 좌파의 '거대한 착각'

바람아님 2017. 7. 28. 08:16
조선일보 2017.07.26. 03:17

'한강의 기적'을 깔아뭉개는 사람들이
분배의 크기를 늘리려고 한국을 선진국 취급한다
반드시 그 청구서가 국민에게 날아올 것이다
선우정 사회부장

얼마 전 본지 1면에 '동네 시급(時給)' 기사를 실었다. 지금 우리 현실을 지배하는 건 정부가 결정하는 최저 시급이 아니라 동네 사정에 따라 형성되는 시급이란 것을 현장 취재를 통해 전했다. 예를 들어 한 지방 서민 동네의 편의점 시급은 평균 5700원 정도였다. 법정 시급 6470원에 못 미친다. 내년 법정 시급이 7530원으로 오르면 그 동네 업주 상당수가 '범법자' 그룹에 합류할 것이다. 아니면 망하든지. 정부는 세금으로 일부 도와줄 테니 법대로 살라지만 현실은 다르다.


사회부 중간 데스크를 하던 13년 전에도 비슷한 기사를 실었다. 그땐 최저임금을 떼먹는 업주를 직설적으로 고발했다. 항의를 꽤 받았다. "다 주면 망한다"고 했다. 그들을 믿지 않았다. 영화 '카트'에 나오는 악질 편의점처럼 가난한 아이 돈 빼먹는 악덕 업주들이 떼로 달려들어 항의한다고 여겼다. "법대로 못하면 문을 닫아야죠." 이렇게 쏴붙였다. 어리석을수록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 이 사회엔 강자와 약자보다 약자끼리 맺은 갑을 관계가 훨씬 많다는 걸 훗날 알았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는 280만명이다. 이 규모는 매년 늘었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계속 커진다. 내년엔 313만명, 16.3%에 이른다고 한다. 숫자가 알려주는 신호는 명확하다. 경제 체력이 변화를 못 따라간다는 경고등이다. 못 받는 쪽이 문제가 아니다. 이들 절반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 어림잡아 업주 수십만명이 범법의 족쇄에 걸려 있다. 내년엔 더 늘어날 것이다. 정권이 지방 노동시장을 거대한 암시장으로 만들고 있다. 범법자를 늘리는 법을 '악법(惡法)'이라고 한다. 악법은 이 사회 최말단의 약한 갑(甲)을 표적 삼아 이렇게 쏴붙인다. "법대로 하든지, 망하든지." 상당수에겐 어차피 같은 길이다.

無人주문기, 셀프 주유소… 고용 줄이는 자영업자들 - 17일 서울 종로의 한 쌀국수 식당에서 고객이 무인기로 주문하고 있다(왼쪽). 같은 날 서울 서대문구의 한 셀프 주유소에서도 손님이 직접 자신의 차에 기름을 넣고 있다. 식당과 편의점 등은 임금이 오르면 고용을 줄이기 위해 주문 등의 일을 자동화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태경 기자

온갖 트집을 잡아 '한강의 기적'을 깔아뭉개는 사람들일수록 역설적으로 한국을 선진국 취급한다. 분배 정책을 밀어붙이려면 파이의 크기를 과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년 한국 최저 시급은 비교 가능한 OECD 가입 32개국 중 14위로 중상위권에 속한다. 이럴 땐 "OECD 주요 선진국보다 낮다"며 몰아세운다. 한국의 위상을 G7급으로 격상시키는 것이다. 물론 낮은 게 정상이다. 우린 '주요 선진국'이 아니니까. 알면서들 세상을 속인다.


압권은 '탈(脫)원전'이다. 한국은 제조업 중심 국가이다. GDP에서 제조업 생산이 29%를 차지한다. 월드뱅크 집계 세계 랭킹 2위에 올라 있다. 탈원전을 선언했다가 제조업 붕괴를 견디지 못하고 원전을 재가동한 일본이 21% 수준이다. 탈원전을 하려면 산업구조를 어떻게 바꿀지 청사진부터 내놓아야 한다. 이 정권은 우리나라가 북해 유전을 퍼먹으면서 국민에게 목가적 삶을 제공하는 북유럽인 줄 아는 모양이다. 아니면 문재인 대통령이 선망한다는 히말라야의 경건한 청정 국가 부탄을 지향하는지 모른다. 한국은 애당초 그런 나라가 아니다. 전기를 대량 소비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 반도체·철강·디스플레이·화학·에너지 등 제조업 공장이 국민을 먹여 살린다. 지금 정부가 복지 늘린다며 증세로 손을 벌리는 '초(超)대기업'조차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이게 우리 현실이다.


객관적인 현실을 무시하고 뜬구름을 쫓다가 몰락하는 것을 '거대한 착각'이라고 한다. 마르크스가 프랑스혁명 때 실패한 미련한 좌파를 두고 한 말이다. 이 정부가 좋아하는 OECD 집계를 보면 작년 한국의 1인당 소득(GNI)은 36개국 중 22위다. 중·하위에 속한다. 평균에도 못 미친다. 개발도상국을 벗어났지만 선진국도 아니다.


씀씀이는 이 선상에서 결정하는 게 좋다. 더 인색한 게 현명할지 모른다. 우리는 다른 OECD 국가엔 없는 두 가지 리스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고령화로 미래의 씀씀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다음은 통일 비용이다. 앞으로 오랜 기간 자린고비처럼 인색하게 굴어도 언젠가 우리 재정은 필연적으로 위기를 맞는다. 중학생도 아는 운명을 좌파는 깔아뭉갠다. 정치적 목적 때문이다. 유토피아를 말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가는 길은 정반대다.


결국 '거대한 착각'의 대미는 전시작전권 환수가 장식하리라고 본다. 전작권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친미, 반미 문제도 아니다. 이 문제를 용기와 비겁의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인식이 '자주 국방' 이름 아래 불필요한 비용을 늘려 결국 국가 이익까지 해칠 것이다. 이 거대한 착각들이 모이고 모이면 언젠가 비용 청구서로 국민에게 전가된다. 그 암울한 시기는 5년 후일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