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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내일 당장 선거라도 치를 건가

바람아님 2017. 7. 25. 09:20
[중앙일보] 입력 2017.07.24 02:08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참 별일이다. 정부의 추경안이 통과됐는데 왜 야당을 비난했을까. 22일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집권당이라면 야당에 감사할 법하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집권당 지도부가 모두 야당을 비난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새벽에는 오전에 와서 통과시키겠다고 합의하고, 기어코 어깃장을 놓고 국민을 배신했다”고 말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도 “역대 추경에서 한국당처럼 비협조적인 적이 없었고, 심지어 오늘은 국회를 농락했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한국당이 참여한다고 해 본회의를 열었는데 자리를 뜨는 바람에 의결정족수가 모자랐다는 것이다.
 
의결정족수는 150명이다. 첫 표결 당시 참여한 의원은 146명. 4명이 모자랐다. 그런데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도 27명이 자리에 없었다. 그중 4명만 자리를 지켰어도 조용히 끝났을 일이다. 뒤늦게 한국당 의원 30명 정도가 돌아와 처리됐다. 그렇다면 정족수 부족 책임을 한국당에 물어 비난할 일은 아니지 않았을까.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나 민주당의 태도를 보면 일방적이다. 내가 옳으니 너는 따라야 한다는 식이다. 문재인 정부에 협조하는 것은 선(善)이고, 반대하는 것은 악(惡)이다. 추경은 선이고, 공약한 공직 배제 5원칙도 집권한 뒤에는 발목잡기다. 이런 선악의 이분법에서는 정치가 살아남을 수 없다. 나와 다른 의견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그래야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다.
 
또 한 가지는 집권당의 책임이다. 국정을 끌고 나가는 일차적 책임은 집권당에 있다. 정치적 견해는 정당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차이를 설득하고 타협해 최대한 국정 목표를 실현해 가는 것이 집권당이다. 야당이라고 억지를 부려도 된다는 건 아니지만, 대통령 선거에서 졌다는 이유로 견제와 균형이라는 국회의 기본 역할마저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나 민주당이나 아직 집권당임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야당을 설득해 정책을 실행하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야당의 협조를 끌어내기보다 야당이 얼마나 나쁜 집단인가를 부각하는 데 몰두한다. 마치 빚쟁이처럼 협치(協治)를 내놓으라고 몰아세운다.

 
운전대를 잡은 것은 집권당이다. 승객에게 뒷자리에 앉아 달라, 다음 차를 이용해달라고 요구할 순 있지만 정원을 초과했는지, 더 태울 것인지 계산하는 것도 운전자의 책임이다. 표결에 참석할 의원이 몇 명인지, 몇 명이 찬성하는지 점검하는 것도 여당 원내대표의 역할이다. 과거 집권당들은 중요 표결이 있을 때는 외유 중인 의원들까지 불러들여 표를 확보했다.
 
이번에도 집권당 의원들에게 적어도 표결까지 참석하도록 지시하고, 그래도 모자란다면 야당에 자리를 지켜달라고 부탁했어야 했다. 말만 하면 되는 야당이 아니다.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건 여당이다.
 
이번 일이 새삼스러운 건 1988년의 기억 때문이다. 첫 여소야대(與小野大)인 13대 국회다. 군인들이 집권한 권위주의 정부의 연장이었다. 그런데도 집권당인 민정당은 인내했다. 김윤환 원내총무의 아호인 허주(虛舟·빈 배)가 실감났다.
 
정통성이 취약한 민정당이라서 그렇다고 치부해선 안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의석을 만들어 준 건 국민이다. “국회는 아직 집권 못했다”고 불평할 일이 아니다. 어쩌면 집권 초반기 높은 지지율이 독(毒)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문제는 이번 일만이 아니란 점이다. 추미애 대표는 아직도 선거를 치르고 있는 것 같다. 연일 야당에 독설을 쏟아낸다.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에 대해 “꼬리 자르기가 아니라 머리 자르기”라고 지도부를 겨냥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범죄’라고도 했다.
 
검찰이 머리가 나빠 집권당 대표가 가르쳐줘야 하는 상황이 아니다. 민주당에 대변인이 없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정부 조직법 개정과 인사청문회, 추경안 처리가 놓여 있는 시점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 표를 놓고 경쟁할 국민의당을 부숴야겠다는 의도로 읽힐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는 한국당도 비슷하다. 홍준표 대표는 바른정당을 주적(主敵)으로 삼아 공격을 퍼붓는다. “TK(대구·경북)는 살인범은 용서할 수 있어도 배신자는 끝까지 용서하지 않는다.” 또 그는 바른정당을 ‘기생정당’이라며 “지방선거 전에 흡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거는 비상 국면이다.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다. 그럴수록 평소 정치를 선거처럼 끌고 가면 곤란하다. 국정이 파탄난다. 지방선거는 1년이나 남았다. 그런데 내일 당장 선거를 치를 정당 같다. 더구나 집권당이 선거정국으로 끌고 가 국정 책임을 야당에 떠미는 꼴은 처음 본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