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채용경쟁률 더 치솟을까 걱정돼
맹목적 초경쟁 사회는 불행할 뿐
그러니 최근 청문회에서 장관 후보자의 한두 가지 흠만 보지 말고 그 삶의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봐 달라는 청와대와 여당의 요구는 충분히 말이 된다. 특히 직무철학과 역량을 중심으로 한 건설적 논의와 판단을 위해서는 그 관련성이 높은 과거의 업무 내용과 업적 등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청문회에서는 그런 직무 관련 내용은 상대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으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결국 청문 내용이 얼마나 그 후보자의 미래 업무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가가 성공적 청문회의 핵심이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블라인드 채용은 어떠한가? 원래 블라인드 채용은 인종·외모·이름·학력 등의 영향을 받지 않고 순수하게 지원자의 역량으로만 선발하고자, 그러한 정보를 알 수 없게 스크린이나 벽 뒤에서 과제를 수행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인종·외모·이름·학력 등이 그 직무에 필요로 하는 역량과 상관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직종에서 인종·외모·이름 등은 직무관련성이 거의 없기에 이들을 제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단지 윤리적으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직무 역량 측정의 효율성과 타당성 차원에서도 당연하다.
인간의 사고는 ‘상응 원리(corresponding principle)’를 따른다. 이미 있는 문제를 없애려 할 때는 없앨 원인을 찾고, 뭔가가 없어서 문제일 때는 추가할 원인을 찾아보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있다. 아마 한국 사회에 이미 학벌 문제가 있으니 학력 정보를 없애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생각이 자연스럽다고 그것이 정답은 아니다. 인간의 판단은 어차피 주어진 정보로 결정된다. 주어진 정보가 줄어들면 남아 있는 정보의 역할이 커진다. 이때 더 나은 결정이 나오려면 남아 있는 정보가 없어진 정보보다 더 유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정보를 없애기보다는 더 많은 정보를 추가하는 것도 학력과 같은 특정 고정관념의 영향을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심리학 연구 결과도 많다. 학력이 주는 정보가 필요한 만큼만 영향을 미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직무 역량에 대한 명확한 설명, 그에 맞는 타당한 선발 기준과 방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블라인드 채용이 무슨 문제를 해결할까? 어차피 채용할 숫자는 정해져 있는데 과연 블라인드 채용이 청년취업난을 해결할까? 더 심각한 문제는 만약 취업 준비생에게 명확한 직무 역량을 알려주지도 않고 어떻게 뽑히는지도 이해시킬 수 없다면 자신이 도전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안 그래도 비정상적으로 높은 공무원과 공공기관 채용경쟁률이 더 치솟을까 걱정된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다양한 역량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직종이 공존하며 청년들 각각 자기가 뛰어난 서로 다른 역량을 발휘하면서 사는 세상이지, 무슨 역량이 필요한지도 모르는 직종에 모든 사람이 몰려가서 불행해지는 초경쟁 사회는 아니지 않은가?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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