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멀리서 배롱꽃 소식이 날아왔다. 칠산바다가 환영인 듯 내려다보이는 곳. 그 바다와 잇닿은 뭍 언덕배기에 터를 잡고 해산(海山) 노인으로 살아가는 선생이 보내주신 문자였다. “이순신 장군에겐 열두 척의 배가 있으나 나에겐 열두 그루의 배롱나무가 있다.” 선생이 신호처럼 보내는 열두 그루라는 숫자가 가락이 실리며 입에 붙었다. 선생께서는 왜 애잔하게 피어나는 찔레꽃이 아니고 늦봄에 피어나는 장미가 아니라 하필이면 배롱나무를 심었을까.
배롱의 다른 이름은 자미화이다. 옥황상제가 사는 정원의 이름이 자미원으로, 그 배롱의 자미인 것이다. 옥황상제의 자미원을 볼 수는 없지만 배롱의 자미화를 볼 수 있는 곳은 많다. 한 시인은 배롱나무를 두고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라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목백일홍 나무는 환하다”고 했다. 그 모양이 꼭 사람을 닮았다. 누군가는 지고 누군가는 세상에 나고….
옥황상제의 자미원에 배롱이 있듯 무덤가에도 배롱나무가 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분명한 지점, 그곳에 붉은 배롱나무가 위로하듯 서 있는 것이다. 자손발복의 기원으로 심었다지만 나는 그곳이 자미원을 본떠 만들었을 것이라는 데 마음이 간다. 부디 그곳에서 저승의 복락을 누리라는 비원으로.
선생이 사는 곳은 선계나 다름없었다. 스스로 앞뜰에 당신이 사후에 깃들 집을 마련했으니, 그곳이 곧 살아서의 집터이고, 죽어서의 공간인 것이다. 그러니 살아서 보는 배롱과 죽어서 볼 수 있는 배롱을 함께 두었으니 선생은 이미 도인이 아니겠는가.
선생이 열두 그루의 배롱나무를 가지고 있다면 나에게도 배롱꽃의 기억이 있다. 은밀한 배롱꽃은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각기 다른 추억을 전한다. 내가 가슴앓이를 할 때도 가슴속 배롱꽃은 저 혼자 피었다 지고 저 혼자 붉었다 진다. 그래서 배롱나무는 나에게 슬픈 나무였다.
열두 그루의 배롱나무가 있다고 배롱꽃 소식을 전한 선생은 제자들의 근황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것도 많이, 아주 많이. 선생의 마음을 나눠 가진 제자와 후배들이 그렇듯 저 살겠다고 세상에 나가 소식 한 통 없이 보낼 때, 선생은 배롱이 피고 지는 것을 보며 홀로 붉어졌던 모양이다.
나에게 소설을 가르쳐 준 분이 바로 그분이셨다. 한데 애면글면 살아가느라 나는 그동안 선생님을 찾아뵙지 못했다. 얼마전 미친 듯이 세상을 살지 말고 소설을 쓰라고 죽비처럼 나를 때릴 때도 나는 선생님을 찾아뵙지 못했다. 이 시대에 어른이 없다고 투덜대면서도 정작 어른을 찾아뵙지 못했으니 나는 미련하다. 배롱이 지기 전에 열두 그루의 배롱을 보러 가야겠다. 그 배롱이 만든 붉은 비단길을 따라 스승을 만나고 스승의 길을 따라야겠다.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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