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문희수의 시사토크] 옛 일본 민주당의 추억

바람아님 2017. 8. 25. 09:03
한국경제 2017.08.24. 01:03

초대형 복지정책들이 잇따른다.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신설, 건강보험 확대 등이 내년부터 속속 시행될 참이다. 각각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이 들어간다. 물론 명분 없는 사업은 없고, 수혜 계층은 대환영이다. 그렇지만 역시 문제는 과연 감당할 수 있느냐다.


문득 굴곡이 심했던 옛 민주당 집권 때의 일본을 떠올리게 된다. 2009년 총선에서 토목사업 예산을 줄여 복지를 늘린다며 이른바 무상복지 패키지로 자민당에 압승을 거두고 54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 민주당이었다. 중학생 이하 자녀 1인당 매월 2만6000엔(당시 약 34만원)을 주는 자녀수당, 고교 무상교육, 전국 고속도로 통행료 폐지는 3대 공약이었다. 이외에 결혼수당, 전 국민 연금 지급, 유류세 폐지 같은 공약도 있었다. 모두 16조엔 이상의 재원이 필요했지만 증세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시행을 앞두고 재원이 막막했다. 결국 자녀수당은 2010년 1인당 1만3000엔으로 축소 시행되다 다음해엔 없던 일이 됐다.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도 3개 구간에만 시행됐다가 전면 폐지됐다. 연금 지급과 유류세 폐지도 포기해야 했다.


'악어의 입' 경고했던 일본

그 사이 일본 재정은 더 악화됐다. 국가 부채는 민주당 집권 직전인 2009년 6월 860조엔에서 집권 1년을 갓 넘긴 2010년 9월 908조엔으로 늘었고, 자민당에 정권을 내준 2012년 12월엔 928조엔(국내총생산의 219%)까지 불어났다. 2010년에 만난 일본 정부의 모 국장은 이를 ‘악어의 입’이라고 부르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세출이 급격히 늘어 세입과의 격차가 갈수록 커진다는 것이었다. 2011년 한·일 재무장관회의에서도 일본 측은 이런 ‘악어 그래프’를 보여주며 따라 하지 말라고 경고성 당부를 했다.


급기야 민주당 정부의 마지막 총리였던 노다 요시히코는 재정 건전화와 국가 부채 감축을 위해 총선을 앞둔 2012년 8월 정치적 독배인 소비세 증세를 결정했다. 이후 정권이 바뀌어 자민당의 아베 신조 총리가 후임이 됐지만 2014년 4월 소비세율을 5%에서 8%로 올렸다. 그만큼 일본의 재정 사정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당 집권은 2012년 12월 총선에서 대패하며 3년3개월 만에 끝났다. 일본 국민들의 분노에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9개월 재임), 간 나오토 전 총리(1년3개월), 노다 전 총리(1년3개월) 등 민주당 총리들은 하나같이 단명했다. 민주당은 일본 국민에게 ‘무능한 정당’으로 낙인 찍혀 지금은 간판조차 없다. 포퓰리즘 정치의 허무한 결말이다.


실패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불과 10년도 안 된 일이다. 따라 하지 말라는 것을 일본의 실패에서 배운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닮은꼴이다. 이미 100대 국정과제 이행에 5년간 178조원이 들어간다. 정부와 여당은 증세 없이 조달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은 돈이 필요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여기에 정부는 신고리 원전 5·6호기 중단 비용,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지원 등 계속 돈 쓸 약속을 한다.


과거 일본 민주당조차 재원 부족을 의식해 구조조정을 통해 공무원 총인건비를 20% 줄인다고 했다. 그래도 일본은 1인당 소득이 4만달러를 오르내리는 세계 3대 경제강국이다. 엔화는 달러화, 유로화와 함께 글로벌 결제통화다. 이런 일본도 두 손 든 것을 이 정부는 일거에 해결하려고 한다. 정부가 다 해주지는 못한다. 소위 ‘부자증세’를 한들 세금이 얼마나 더 들어오겠나. 선택과 집중이 아니면 어디에서든 펑크가 날 수밖에 없다. 부채 국가로 갈 것인지.


문희수 경제교육연구소장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