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김세형칼럼]집단지성 vs 직접민주주의

바람아님 2017. 8. 27. 10:37
매일경제 2017.08.26. 06:04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정부 출범 100일기념 국민인수위원회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이충우 기자
[김세형 칼럼] 정부 출범 100일 기념 국민보고대회 마무리 발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들은 주권자로서 평소 정치를 구경만하고 있다가 선거 때 한표 행사하는 간접민주주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그 결과 우리 정치가 낙오되고 낙후됐다고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촛불집회처럼 정치가 잘못할 때 촛불을 들어 정치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라며 국민들은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들의 집단지성과 함께 나가는 것이 국정에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국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겠다고 부언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헌법1조대로 국민에게서 나온다. 대통령이 그 뜻을 우선하겠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미국이 대공황, 2차대전과 같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렸을 때 루스벨트 대통령은 '노변정담'이란 라디오방송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국민에게 직접 전달해 호응을 얻었다. 대통령의 국민과의 직접소통은 지지율이 80% 이상으로 높을 때 국회에서 이런저런 발목을 잡으면 더욱 더 간절해지는 것 같다. 국민의 뜻, 그것을 무엇으로 파악할 수 있느냐? 그것은 매우 기술적인 문제다. 


여론조사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탈(脫)원전에 대한 생각에서 보듯 대중은 1주일만에 생각이 바뀐다. 대중은 변덕스럽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매번 국민의 뜻을 물을 수도 없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국가는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같은 헌법기관을 통해 국민의 뜻을 대신 집행하는 방식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하여 전세계가 18세기 이후 이 방식을 택하고 있다. 국민이라는 집단의 생각은 곧 집단지성으로 일견 동일시 하려는 직관에 빠지기 쉬우나 그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간략하게 일별하겠다.


◆집단지성

찰스 리드비터가 쓴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술에서 개인이 혼자서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을 창조하기 위한 집단적 노력을 지칭한다. 여기엔 창의적인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개인들의 사진동영상만 모아 놓은 유튜브는 집단지성과는 거리가 멀다. 하와이 말로 빠르다는 뜻이 담긴 위키(wiki)피디아, 즉 사이버상의 백과사전이 대표적인 집단지성 활동으로 꼽힌다. 리드비터는 군중이 항상 지혜로운 것은 아니고 민중이 현명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작은 집단의 지성들을 합하여 더 큰 탑을 쌓는 게 집단지성의 요체다. 광장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 촛불을 들고 같은 함성을 외쳐봐야 그것은 집단지성이 아닌 집단목청일 뿐이다.


 MIT집단지능연구소는 실험을 해봤다. 120명의 IQ를 측정한 후 3명씩 40개그룹을 편성해 문제를 풀어보게 시켰다. 아주 다양한 미션을 주어본 결과 과연 집단지성이란게 존재했다. 우선 IQ와 CQ(집단능력)는 관계가 없었다. 즉 가장 IQ가 높은 사람이 포함돼 있는 그룹이 최고의 CQ를 만들진 못했다. 그룹내 한명이 독주하는 가의 여부, 여성의 숫자,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EQ) 등 3가지가 중요했다.


리드비터는 집단지성이 성공하려면 5가지 법칙이 필요하다고 설파한다. 

1)핵심의 원칙이다. 혁신의 성공은 전문지식, 통찰력을 결합하는 소수의 핵심그룹에서 출발해야 한다. 

2)기여의 원칙이다. 누가, 왜,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 기여하는가가 전제된다. 핵심의 주위에 집단의 지혜가 켜켜이 쌓여야 한다. 3)관계맺기 원칙이다. 아이디어가 흩어져 돌아다니면 소용없다. 


제임스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DNA이중나선형 구조를 밝혀냈다. 전문지식이 다른 사람이 모이면 1+1=12의 성과가 나온다. 

넷째 협업의 원칙이다. 아무리 기여자, 관계자가 많아도 질서정연하게 꿰지 못하면 헛일이다. 체계화된 기록이 열매를 맺는다. 다섯째, 창의성의 원칙이다. 오픈소스 공동체는 끊임없는 피드백을 통한 지식의 첨단화가 생명력이다. 여기엔 소수의 식별능력자에 의한 자율규제가 요구된다. SNS, 블로그에 깊이 빠져든 사람은 집단지성을 만들어낼 수 없다.


◆직접민주정치

직접민주정치란 내 자신이 주체가 돼서 정치적 의사표시를 하는 행위다. 내손으로 대통령 국회의원 시장을 뽑는 행동이다. 스위스는 탈원전을 결정할 때 국민투표를 5번이나 했다. 이 나라는 인구가 820만명 정도인데 매년 대여섯번의 국민투표를 해서 주요한 결정을 한다. 한국의 세종시 이전 같은 것도 스위스라면 국민투표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인구가 훨씬 적은 아이슬란드나 싱가포르도 직접 국민투표를 하지 않는다. 전세계적으로 국회의원을 뽑고 그들이 형성한 정당정치를 통해 국민의 의사는 표출되도록 헌법이 제정돼 있다. 간접민주정치로 부족한 부분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가 언론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 댓글도 달고 시위도 하며 SNS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공론화 하는 것이다.


근래에는 유럽의 경우 시민단체나 아니면 자신이 스스로 정당을 만들어 아예 정치적 정상에 오르는 경우까지 나타난다. 스페인의 포데모스 정당, 프랑스의 마크롱 같은 경우다. 마크롱은 나홀로 국회의원인 앙 마슈라는 정당을 만들어 단번에 대통령이 됐고 그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당한 1당으로 등극해 국가를 통치하고 있다.


이 모든 헌법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을 뽑을 시점과 임기 4년동안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똑같진 않다. 저러라고 저사람을 대통령, 국회의원에 뽑았냐며 손가락에 장을 지지고 싶다는 유권자를 흔히 볼 수 있다. 박근혜를 대통령에 찍은 사람들 가운데에도 이런 사람이 엄청나다.


이러한 안타까움을 줄이는 방식으로 광장정치, 촛불정치도 있겠지만 그것은 포퓰리즘으로 흐르기에 더 알맞다 할 것이다. 한국 정치사에서도 4.19, 6.29와 같은 시민혁명으로 정치체제를 바꾼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민주주의가 성숙되고 선진화된 나라에는 박물관의 유물일 뿐이다. 광장정치가 극성을 부리는 선진국을 지구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직접민주정치를 더 확장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미국 하원처럼 임기를 2년으로 축소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또한 의원내각제는 임기가 5년으로 고정된 대통령제에 비해 지지율이 추락하면 1년에 두번도 총리를 바꿀 수 있어 직접민주정치의 취지에 더 가깝다 할 것이다. 가까운 일본이 거의 10년간 매년 선거로 직접민주주의를 만끽했다.


그런데 정치란 가치실현을 위한 선택의 문제요, 이념구현의 수단이다. 이것은 창의와 지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집단지성과 확연히 구별된다. 그러므로 직접민주주의가 넘친다 하여 국민의 행복이 커지지도 않는다.


[김세형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