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김현기의 시시각각] "한국, 너희는 뭐하고 있니?"

바람아님 2017. 8. 29. 08:24

[김현기의 시시각각] "한국, 너희는 뭐하고 있니?"

김현기 중앙일보 2017.08.29. 02:35

대북 독자제재에 미·일 공조, 한국 뒷짐
미군철수, 코리아패싱 빌미 줘선 안 돼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워싱턴 하면 ‘정치’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은 세계 경제의 중심이기도 하다. 그 양대 산맥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그런데 두 기관에는 미묘한 차이점이 있다. 우선 IMF는 공적인 측면이 강하다. 다양한 국적의 ‘프로’들이 전 세계에서 모인다. 그래서 본인의 고용, 자녀의 생활 안정을 위해 65세까지 정년을 보장한다. 정책도 중장기적이다. 반면 세계은행은 민간영역 업무가 대부분. 고용도 전출입이 많아 정년이 없다. IMF의 이주경 박사는 “결혼(IMF), 동거(세계은행) 중 어느 쪽을 택하느냐는 본인 가치관에 달려 있다”고 설명한다.

동맹관계를 이에 대입하면 일본은 분명 미국과 ‘결혼’을 택했다. 지난 14일 휴가를 즐기던 트럼프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올해 들어 아홉 번째. 호칭은 퍼스트네임인 ‘신조’ ‘도널드’다. 양국 소식통에 따르면 통화에서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신조! 우리는 북한을 돕는 중국·러시아의 기업·개인에 대해 다음 주(22일) 제재를 발표할 것이다. 당신도 같은 날 동시 발표하자.”


아베는 즉답을 피했다. 일 재무성은 신중론을 폈다. 하지만 아베는 동시 발표까진 안 갔지만, 사흘 후에 미국과의 동반 제재를 강행했다. 금방 끝날 게임으로 보질 않았던 게다. 그렇다고 아베를 명령순응형 배우자로만 볼 순 없다. 국방장관 간 사이가 썩 좋지 않은 걸 간파하곤 미·일 국방장관 만찬장을 불쑥 방문해 분위기를 바꿔놓는 철두철미함, 트럼프에 잔뜩 생색을 내면서도 다음달 6~7일 러시아 방문을 의식해 러시아 기업은 제재 대상에서 슬그머니 빼는 영민함도 갖췄다.


문제는 ‘트럼프-아베’ 찰떡궁합의 불똥이 우리에게 튀고 있다는 사실. 한마디로 “우린 다 독자 제재하는데 정작 한국 너희는 뭘 하고 있니?”란 압박이다. 지난 3월과 6월, 그리고 이번 제재 모두 한국만 쏙 빠지고 있는 상황에 트럼프의 짜증은 극도로 고조되고 있다고 한다. 25일 문재인-아베 통화에서도 이런 메시지가 간접 전달됐다는 후문이다.


사람 간 인간관계도, 국가 간 외교도 첫 출발은 정확한 상황 파악이다. 미국은 “‘군사 해법’을 호주머니에 넣고 ‘외교적 해법’으로 문제를 풀겠다”고 했다. 우린 이를 “아~, 이제 군사옵션 안 쓰고 곧 북한과 대화 시작하겠구나”라고 해석한다. 큰 오산이다. 미국이 말하는 ‘외교적 해법’의 참뜻은 국제사회와의 공조, 연대를 통해 강력한 외교적 압박을 가하겠다는 뜻이다. 방점이 다른 데 찍혀 있다. 아베는 이를 읽었다. 22일 다른 나라도 아닌 동맹국 이집트에 대해 북한에 우호적이란 이유로 3300억원 지원금 중단이란 철퇴를 가한 걸 보자. 마냥 대화로만 달려갈 것 같으면 이런 조치를 할 리 없다. 그럼에도 당사국인 우리가 독자 제재에 손놓고 있다는 건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땐 배우자로도 동거 파트너로도 인정하기 힘든 상황일 것이다. 게다가 ‘몸값’이 치솟은 북한은 뉴욕 라인이고 뭐고 꼼짝도 않고 있다.


“전쟁 나도 저쪽(한반도), 수천 명 죽어도 이쪽(미국) 아닌 저쪽” 발언은 트럼프의 본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거기에 ‘미·중 주한미군 철수 빅딜’ 같은 오싹한 아이디어들이 한반도 상공을 패싱한다. 이런 때일수록 우린 그들이 ‘원하는 대로’ 치닫을 빌미를 줘선 안 된다. 북·미를 대화로 잇는 노력은 계속하되 미국과의 공조와 신뢰를 수 배, 수십 배 더 공고히 다져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미국에 쓴소리를 할 수도, 설득할 수도,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 지금은 우리가 결혼이건 동거건 가릴 때가 아닌 것 같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美 제재동참 요구에 고심한 韓, '거래주의 촉구'로 절충

연합뉴스 2017.08.28. 18:22 수정 2017.08.28. 18:53

한미공조·한중관계 감안 관측..직접 제재 대신 간접 조치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정부는 28일 단둥은행을 비롯해 미국 정부가 북핵·미사일 프로그램 지원을 이유로 독자 제재 리스트에 올린 중국·러시아 기업 등과의 거래에 대해 각별히 주의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는 이날 관보에 게재한 기획재정부 장관 명의 '미국 정부 지정 금융제재대상자 등과의 거래 주의 요청' 공고에서 "미합중국 정부는 2017년 6월29일 및 8월22일 북한의 핵개발 및 이와 관련된 차단을 위해 대통령명령(Executive Order) 제13382호 및 제13722호에 의거한 제재대상자와 애국법 제311조에 의거한 '주요자금세탁 우려대상'을 다음과 같이 지정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관보의 첫번째 면의 일부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jhcho@yna.co.kr 2017.8.28
(서울=연합뉴스) 김승두 기자 =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8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7.8.28 kimsdoo@yna.co.kr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정부가 28일 미국의 대북제재 관련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러시아 기업(중국 7곳·러시아 1곳) 및 개인(중국인 3명·러시아인 4명)과의 거래에 주의할 것을 관보를 통해 공고한 것은 한미 공조와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동시에 감안한 '절충'으로 풀이된다.


이번 조치는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지원 혐의를 받는 중국·러시아 기업에 대한 우리 정부의 독자제재 성격이 있다. 하지만 해당 기업과 우리 기업 간의 거래를 금지하고 해당 기업의 국내 자산을 동결하는 등의 직접 제재가 아닌 우회적 방식을 택했고, 강도 면에서도 거래 금지가 아닌 거래 주의 촉구 선에 머물렀다.

앞서 미국 정부는 한미정상회담 직전인 지난 6월 29일 북한의 돈세탁과 불법 금융활동의 통로 역할을 했다며 단둥은행을 돈세탁 우려기관으로 지정하고 다롄 국제해운을 재재 대상에 올렸다. 이어 지난 22일에는 중국 기업 5곳, 러시아 기업 1곳 등에 대한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우리 정부가 이들 기업이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된 사실을 관보를 통해 공개하고 이들과의 거래 주의를 촉구한 것은 미국의 제재에 동참하는 간접적 조치로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는 박근혜 정부 때인 작년 12월, 북한의 제5차 핵실험(작년 9월 9일)에 대한 독자제재 차원에서 미국의 독자제재 명단에 올라있던 단둥훙샹(鴻祥)실업발전(이하 훙샹)을 우리 정부가 정식으로 제재했던 상황과 차이가 있다.


또 정부의 이번 조치는 일본이 최근 미국과 보조를 맞춰 취한 조치와도 수위 차이가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28일 단둥은행과 다롄국제해운 등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른 기업들을 자산동결 대상으로 지정함으로써 자국의 정식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단둥은행 등을 독자제재 한 뒤 외교 경로를 통해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정부에 '동반 제재'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정부가 고심 끝에 직접 제재 대신 제재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간접 조치를 택한 것은 대북 정책과 관련한 한미 공조와 더불어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의식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주한미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로 심각하게 악화한 한중관계를 감안할 때 중국 기업을 정식으로 제재할 경우 중국이 우리 기업들을 상대로 한 '사드 보복'의 강도를 더 높일 수 있는 점 등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북핵 해결 과정에서 한중간에 협력해야 할 여지가 큰 점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의 경우는 내달 6∼7일 문재인 대통령이 동방경제포럼(블라디보스토크) 참석을 계기로 러시아와의 경협 강화를 담은 '신 북방정책'을 발표할 계획이라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이 최근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도발 자제'로 평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북핵 관련 대화 국면 조성에 힘을 쏟고 있는 상황도 우리 정부의 조치 수위 조절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이번 조치는 정부의 고심이 담긴 창의적인 외교로 평가할 측면과 함께 미국과 중·러 사이에서 우리 정부가 겪고 있는 '딜레마'를 재확인시킨 측면이 있어 보인다.


특히 미국이 앞으로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을 불법 유무와 관계없이 일괄 제재하는 '세컨더리보이콧'을 정식 단행할 경우 우리 정부의 고민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올들어 미국이 중국 기업들에 대해 취한 독자제재는 북한 문제를 넘어, 무역과 관련한 '중국 때리기'의 성격이 내포돼 있다"며 "그런 상황을 감안할 때 우리 정부도 적극적으로 '동반 제재'를 하기에는 부담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