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서소문 포럼] 문재인 정부, 산업·금융정책이 안 보인다

바람아님 2017. 9. 2. 10:58
중앙일보 2017.09.01. 02:34

신성장산업 많이 나와야 복지도 지속 가능한데
정책 부재에 인사 난맥상으로 기업은 복지부동
김광기 제작2담당·경제연구소장
문재인 대통령은 복지와 일자리에 나랏돈을 붓는 걸 마중물에 비유했다. 귀에 쏙 들어오는 설명이다. 우리 경제의 펌프는 지금 고물이 돼 가고 있는 게 맞다. 정부라도 물을 부어야 그나마 껄떡껄떡 움직인다. 그러나 언제까지 마중물에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성능 펌프를 서둘러 설치해야 하는 이유다.

고성능 펌프는 경제의 신성장동력을 의미한다. 거기서 양질의 일자리와 세금이 나온다. 신산업 육성정책을 짜고 지원 방안을 마련하는 건 정부의 책무다. 기업들이 알아서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정부가 물꼬를 터주고 도와줘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본받고자 하는 노무현 정부도 이런 작업에 나름 충실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후발국의 추격이 무섭다. 새로운 성장동력과 발전전략을 짜야 한다”고 했다. 경제부처 장관들에겐 “우리 경제를 먹여살릴 미래 먹거리를 찾자”고 독려했다. 윤진식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은 경제 5단체 등 재계와 머리를 맞댄 끝에 10대 성장동력 산업을 육성하기로 뜻을 모았다. 차세대 반도체와 이동통신, 2차 전지, 디스플레이, 바이오신약, 로봇, 미래형 자동차 등이다. 지금 한국 경제를 먹여살리고 있는 업종들이다.


금융도 성장산업으로 대접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한국을 동북아시아 금융허브로 만들자”고 했다. 자본시장통합법 등을 만들어 금융업 권역 간 칸막이를 낮췄고 신상품 개발을 막던 규제도 줄였다. 그래서인지 펀드 투자 붐이 조성돼 주식 값이 뛰고 기업의 자금 조달도 수월해졌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어떤가. 복지정책만 보일 뿐 이렇다 할 산업·금융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중소벤처기업부와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새로 출범하지만, 정책 방향은 오리무중이다. 앞으로 논의하면서 준비하겠다는 식이다. 산업정책의 맏형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탈원전정책에 올인하는 듯하고 신성장동력에 대해선 꿀 먹은 벙어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미래 먹거리 발굴은 뒷전이고 통신비 깎는 데 혈안이다. 금융정책에선 카드 수수료 인하나 가계부채 관리 방안 등이 집중 거론된다. 금융을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시킬 의지는 읽히지 않는다.


아직 정권 초기이니 앞으로 달라지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갖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경제부처 장관이나 기관장의 인사를 보면 감을 잡을 수 있다. 시장 참여자들은 경제부처를 끌고 갈 인물의 면면을 통해 정책을 가늠한다. 그런데 갈수록 실망의 소리가 커지고 있다.


백운규 산업부 장관의 행보가 대표적이다. 탈원전 전문가로 발탁된 그는 산업정책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재계 인사들이 그에게 통상압력 충격 같은 고충을 털어놓으면 “일자리 창출에 협조해 달라”고 동문서답하기 일쑤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자질 논란에 휘말려 취임도 못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대선캠프에서 일한 교수 출신이다.


금융계에선 금융감독원장 인선을 놓고 떠들썩하다. 김조원 전 감사원 사무총장이 낙점됐다고 알려지면서다. 그 역시 캠프 출신으로 금융정책엔 문외한이다. ‘보은 인사’ ‘금융 홀대’ 등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힘센 기관장을 맞은 금감원과 재무관료 집단인 금융위원회가 사사건건 충돌할 것이란 걱정까지 가세한다.


복지와 달리 산업·금융정책은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믿음직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고 규제를 걷어내면, 얼마든지 민간 자본이 모이고 투자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돈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 게 기업과 시장의 생리다. 그래서 좋은 정책을 만드는 데 시장과의 소통 능력은 필수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과거의 적폐를 반성하며 조용히 따라오라는 식이다. 대통령이 소통의 정치를 약속했지만, 경제는 벌써 불통이다. 재계는 침묵 모드로 들어갔다. 새 정부는 신산업을 육성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것인가. 아니면 내버려둬도 경제가 잘 굴러갈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인가.


김광기 제작2담당·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