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김정은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시험발사는 또 다른 게임 체인저다. 핵탄두의 ICBM 장착은 핵 능력의 마지막 관문이다. 워싱턴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북한이 이달 초 괌 주변에 미사일 발사를 예고하면서 수사(修辭) 전쟁이 벌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화약내 짙은 트윗은 한반도 위기지수를 높였다. “외교가 우선 수단이지만 군사적 옵션이 뒷받침하고 있다”고 한 미 국무·국방장관의 언론 기고문이 공식 입장이 아닌가 싶다.
북한의 미사일·구두 시위는 워싱턴 일각의 속내도 비춰 주었다. 북핵 용인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수전 라이스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우리가 냉전 때 소련 핵무기 수천 개의 위협을 용인한(tolerate) 것처럼 북한 핵무기를 용인할 수 있다”고 했다(뉴욕타임스 기고문). 그러면서 핵무기 사용과 이전을 레드라인으로 제시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전략적 인내’ 정책의 중추로 북핵 능력을 키워 놓은 장본인이 이제 와서 억지와 현상 동결론을 폈다. 저명한 외교 칼럼니스트 파리드 자카리아의 주장도 흡사하다. “세계는 이미 핵보유국 북한과 살고 있다. 그 현실을 협상과 외교로 되돌릴 수 없다면 스탈린의 러시아, 마오쩌둥의 중국과 평화를 유지한 것처럼 강력한 억지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둘 외에 상당수 전문가들이 같은 논리를 펴고 있다. 북한이 쾌재를 부를 일이다. 미국과 비핵화가 아닌 핵 군축 회담을 주장해 온 북한이다.
북핵 용인·현상 관리론의 저변에는 불편한 진실이 깔려 있다. 미국 일국 평화주의다. 미국은 현 상태에서 북한 핵·미사일 개발을 동결하면 본토에 대한 위협을 줄일 수 있다. 세계 제일의 억지력도 갖췄다. 그러나 한국과 주변국은 다르다. 북한의 중·단거리 핵미사일 위협은 그대로다. 북한은 핵 배낭 부대의 군사 퍼레이드도 했다. 미 국민 안전 우선이라면 결국 주한미군의 장래도 불투명해진다. 북한의 핵 위협이 현실화됐다고 해서 비핵화의 전략적 목표와 현실적 해법을 포기해선 안 된다. 북·미 대화가 시작되면 지켜야 할 원칙이다. 굴복은 옵션이 아니다.
오영환 도쿄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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