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에선 원래 우위라는 靑 ‘강부자 정권’ 다름없는 재산가들
富의 집중은 당연한 인류역사 주기적으로 재분배 정권이나 가난을 재분배하는 혁명 나왔다
국민 앞서 특권 누리는 집권세력 역사 앞에 겸손할 필요
김순덕 논설주간 |
지난 주말 여당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소통, 탈권위, 공정 등 가치의 문제는 우리가 잘할 수 있고 원래부터 우위에 있었으며 DNA도 강점”이라고 했다. 진보적 가치로 뭉친 사람들은 이슬만 먹고 살 줄 알았다. 다주택자들을 투기세력 취급하며 “사는 집 아니면 파시라”더니 청와대 핵심 참모진 14명 중 절반이 두 채 이상 집을 가졌다. 재산도 평균이 19억7892만 원으로 박근혜 정부 때의 첫 참모진(10명·평균 18억2574만 원)보다 부자다. 2013년 이명박(MB) 정부 퇴임 후 공개된 청와대 고위직 11명의 평균(20억5000만 원)과 별 차이도 안 난다. 청와대 첫 인사 때 재산 평균치가 35억 원이어서 ‘강부자(강남부자) 정부’로 낙인찍힌 MB 사람들만 억울할 판이다.
문재인 청와대의 부(富)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 재산형성과정에서 불법이나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재산의 많고 적음으로 비난받아선 안 된다고 본다. 믿기 싫은 일이지만 인류 역사에서 부의 집중, 불평등의 증가는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었다. 역사학자 윌 듀런트가 “부의 집중은 (다른 인자들이 동일하다면) 도덕과 법이 허용하는 경제적 자유에 비례하고, 최고의 자유를 허용하는 민주주의는 부의 집중을 가속화한다”고 ‘역사의 교훈’에 썼을 정도다. 그렇다면 외려 우리나라의 경제적 자유와 민주주의 만발에 춤을 출 일이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의 불만이 임계점에 달하면 주기적으로 부를 재분배하는 정권, 또는 가난을 재분배하는 혁명이 나타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부를 재분배하는 정권을 자임한다. “한국의 불평등의 근원은 재산의 격차보다는 소득의 격차이며, 소득의 격차는 임금의 격차로 만들어진 것이며, 임금의 격차는 고용의 격차와 기업 간 불균형에서 찾아야 하며, 고용의 격차와 기업 간 불균형의 책임은 재벌 대기업에 있다”는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의 일갈대로(그가 53억7000만 원 상당의 주식을 포함해 93억 원의 재산을 공개한 사실은 굳이 알고 싶지 않다) 재정 확대와 부자 증세를 통한 재분배 정책인 ‘소득중심 성장’으로 양극화가 제발 극복되기를 바란다.
다만 대통령이 ‘촛불혁명’을 강조할 때마다 가난을 재분배하는 혁명으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스럽긴 하다. 석기시대부터 최근 역사를 통틀어 평화적이고 점진적이며 모두가 동의하는 방식으로 부를 재분배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고 미 스탠퍼드대 발터 샤이델 교수는 최근 저서 ‘위대한 평등주의자: 폭력과 불평등의 역사’에서 지적했다. 불평등을 죽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쟁으로 부를 파괴하거나 아니면 100년 전 볼셰비키혁명처럼 피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샤이델이 이런 파국적 결말 없이 평등을 이룩한 모범사례로 우리나라를 꼽는 대목에서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한국전쟁 전에 농부들이 북한 공산주의에 흔들릴 것을 우려해 농지개혁을 한 결과 평화적으로 평등을 이룩했다는 거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주대환도 우리나라 건국과 동시에 이뤄진 농지개혁 덕분에 우리는 평등이라는 DNA를 갖게 됐다고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에서 강조했다. 농림부 장관을 죽산 조봉암에게 맡긴 이승만 초대 대통령, ‘유상몰수 유상분배’로 하되 농민들이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유리한 조건을 주고 지주들은 국채를 받게 명분보다 실질 위주로 설계한 죽산, 그리고 농지개혁을 대세로 받아들여 중소 지주들까지 따르게 이끈 당시 최대 지주이자 한민당의 실질적 오너였던 인촌 김성수 등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진보적 가치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우리는 역사 앞에 겸손할 필요가 있다. 진한 당청관계를 상징한다는 곰탕을 먹는 오찬 자리에서 문희상 의원이 “잘하고 있을 때 조심해야 한다”고 한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청와대를 비롯한 공직사회가 모범을 보일 것은 연차휴가, 칼퇴근이 아니라 봉급이라도 자진 삭감하는 희생의 자세다. 잘나갈 때 조심하지 않았던 자유한국당은 지금껏 기득권을 누려온 이익 집단들과 함께 세금 더 내기 운동이라도 벌였으면 한다. 전쟁이나 폭력혁명으로 가난을 재분배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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