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9.11 강경희 논설위원)
['독일病' 치유 기틀 마련한 슈뢰더 前총리 訪韓 인터뷰]
"대중은 작은 손해에도 개혁 반대… 리더는 국익에 직책 걸어야"
- 시대에 뒤처지면 시대에 잡아먹혀
누적된 복지 부담에 경제 짓눌려 해고 쉽게 하고 연금 수령 늦춰
"개혁 관철된다, 이걸로 상황 끝" 노조 만나며 '상황 끝 총리' 별명
탈원전, 기업들과 수년간 토론… 대체 에너지 충분히 확보 뒤 해야
게르하르트 슈뢰더〈사진〉 전 독일 총리는 '유럽의 병자'라 불리던 독일에서
노동 및 연금·복지 개혁을 감행해 경제 회생의 발판을 만든 인물이다.
인기 없고 고통스러운 개혁을 추진한 대가로 슈뢰더는 2005년 총선에서 패배하고 정계를 떠났다.
지난 8일 방한한 슈뢰더 전 총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노조와 기업 다 개혁에 반발했다. 하지만 실업률이 극적으로 낮아지고 사회보장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지금의 결과를 보면 '어젠다 2010' 개혁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결국 우리가 결정했던 그 길이 옳았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 500만명이 넘던 독일 실업자는 현재 절반으로 줄었다. 실업률은 독일 통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각국에 포퓰리즘이 확산되는 추세에 대해 슈뢰더는
"실업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근원이라면 정치인들이 이 불안을 진지하게 성찰해서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잃어버린 일자리를 새로운 일자리로 대체할 방안을 강구하고, 평생 교육의 기회를 넓혀 재취업 기회도
적극 열어줘야 한다"고 했다.
중도 좌파 정당인 사민당 출신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집권하던 당시(1998~2005년) 독일 경제는 마이너스 또는
제로 성장이 이어졌다. 독일 통일의 반짝 호황은 사라지고 막대한 통일 비용, 500만명에 달하는 실업자, 연금·실업수당·
건강보험의 누적된 복지 부담이 경제를 짓눌렀다. 슈뢰더 전 총리는 2003년 '혁신, 성장, 일, 지속 가능성'이라는 표제의
'어젠다 2010' 개혁안을 발표했다. 50년간 손보지 않은 복지에 메스를 가하고 경직된 노동시장을 개혁하는 정책이었다.
해고를 쉽게 하고, 32개월이던 실업수당 지급 기간을 12개월로 줄이고, 연금 수령 시기도 늦췄다. 노조는 슈뢰더를
'사회 부적응 자폭꾼'이라 공격하며 연일 시위를 벌이고 거세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개혁을 밀고 나갔다.
―사민당의 전통 지지층이 노동자 계층인데 지지 기반을 무너뜨릴 노동 개혁을 한 이유가 뭔가.
"독일 실업자가 500만명에 육박했다. 사회 안전망도 위협받았다. 연금·실업수당·건강보험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사회보장제도는 재정이 감당할 수준이어야 하고 미래에도 지속 가능해야 한다.
재정은 교육과 R&D(연구·개발)에도 투입돼야 하는 돈이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타파해서 더 유연하게 만들고, 사회보장 중에서도 특히 연금과 실업수당을 개혁해야 한다고 봤다.
네덜란드처럼 노·사·정 대타협을 시도했지만 독일에서는 노사가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걸 금세 깨달았다.
그래서 정부 주도 개혁에 나섰다. 시대를 앞서가지 못하면 시대에 잡아먹힌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개혁에 노조와 기업 다 반발했다. 노조는 개혁이 과하다 했고, 기업은 개혁이 부족하다 했다.
오늘날 결과가 증명하듯 우리가 결정했던 그 길이 옳았다.
독일은 개혁으로 유럽 내 다른 어떤 국가와도 큰 차이를 갖는 위치에 올라가 있다."
―집권당 내에서도 반대가 있지 않았나. 노조는 어떻게 설득했나.
"독일 의회는 절반만 넘으면 된다. 집권당은 어떤 개혁 법안도 가능하다.
당시 적녹 연정(사민당과 녹색당의 연립정부)이었는데 연정 파트너라고 무조건 '예스'는 아니다.
녹색당도, 사민당 내부도 설득해야 했다.
사민당 지역별 콘퍼런스를 비롯해 수많은 회합에서 '어젠다 2010'을 몇 시간씩 설명했다.
노조도 설득했지만 노조 간부들은 이념적으로 교조화되어 설득이 쉽지 않았다. 나를 향해 격렬한 시위도 벌였다.
노조와의 대화에서 '이 개혁은 결국 관철될 것이다. 이것으로 상황 끝(더 이상 토론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말한 적 있다.
그 후로 내 별명이 '상황 끝 총리(Basta Kanzler·바스타 칸츨러)'가 됐다.
긍정적 성과가 나타나면서 노조 시위도 줄었지만 그렇다고 노조가 '총리 말이 옳았다'고 대놓고 인정하진 않는다."
2000년대 초 노동·복지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해 독일 경제를 부활시킨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국민에게 힘든 개혁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지만 정치 지도자는 국익을 위해 반드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고 말했다.
슈뢰더와 인터뷰는 방한 직후인 지난 8일 저녁 서울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1시간10분 동안 진행됐다. /김지호 기자
―어려운 개혁에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가.
"여론조사를 해보자. '우리나라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90%가 응답한다.
막상 개혁으로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오면 90%가 반대로 돌아선다.
독일이나 한국처럼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한 민주사회에서 국민에게 개혁과 변화의 필요성을 설득하기란 매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개혁 결정은 오늘 내려야 하는데, 효과는 최소한 2~3년 지나서 나온다는 점이다.
이 사이에 선거가 있으면 집권당이 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다. 국민은 당장 드러나는 부정적 측면만 보지 앞으로의
긍정적 효과는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치 지도자라면 반드시 국익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어떤 정치인도 선거에 패하고 싶지는 않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란 어떠해야 하는가.
국가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기 직책을 잃어버릴 위험 부담도 감내하고 개혁을 추진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총선 패배로 개혁을 후회하지 않았나.
"안타깝게도 내가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부터 개혁 효과가 나타났다.
후임자 메르켈 총리는 내가 한 개혁의 긍정적 과실을 수확한 셈이다. 메르켈 총리도 이 점을 인정했다.
실업률이 극적으로 낮아지고 사회보장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지금을 보면 '어젠다 2010'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정치인으로서 차세대가 미래에 평가내릴 것을 생각한다면 개혁의 성과를 알기에 후회한 적은 없었다."
―당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제3의 길' '신(新)중도'를 선언했다. 왜 좌파 정당의 노선 변화를 시도했나.
"유럽 중도 좌파 정당들은 '분배를 통한 정의 실현'에 역점을 뒀다.
토니 블레어와 나는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경제가 성장해야 그에 기초해 분배도 할 수 있다고 봤다.
독일 사민당과 달리 프랑스 사회당은 좌파 성향이 더 강했고 그런 변화가 없었다.
사회당 출신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은 노조와 국민의 반발을 살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개혁을 못했다.
그 실수를 만회하고자 지금 마크롱 대통령이 개혁을 추진한다.
개혁 여부가 오늘날 독일과 프랑스 경제의 차이를 가져왔다."
―한국 정부는 독일을 모델로 탈원전을 추진한다. 당시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짓던 원전도 공사 중단한 적 있나.
"그건 없었다. 우리는 원전 건설을 신규로 허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에너지 대기업들과 토론을 통해 어떤 시점에 탈원전을 할 것인지 합의를 이룬 뒤 법안을 마련했다.
기업들은 40년이 필요하다고 했고, 연정 파트너 녹색당은 25년을 주장했다.
그 중간쯤인 2032년에 원전을 통한 마지막 전력 생산을 하기로 합의했다.
탈원전을 몇년 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누구도 단언 못한다.
독일은 그 정도면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봤기에 시한을 그리 정한 것이다.
메르켈 정부에서 탈원전 법안을 무효화했다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재추진했다.
그런데 2032년이 아니라 2022년으로 앞당겼다. 이 결정은 잘못됐다고 본다. 너무 촉박하다.
탈원전 시한을 정할 때는 대체 에너지원이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 우리는 신재생 에너지에 엄청나게 투자했다.
독일은 햇빛이 많지 않아 태양광은 충분치 않았고 풍력에서 특히 세계적으로 앞서나가게 됐다."
―에너지 기업과 합의는 누가 끌어냈나.
"내가 직접 몇년에 걸쳐 토론했다. 기업과 합의는 2002년 성사됐다.
정부가 연방 하원의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어 법안을 그냥 통과시켜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탈원전은 정부 의지뿐 아니라 에너지 기업도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고 적절한 에너지 대안이 있어야만 합의도
이뤄질 수 있다. 이해 당사자를 참여시켜 합의를 이루는 것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과정도 힘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는 바로 이런 일 하라고 있는 존재다.
우리가 하는 일이 시대 흐름에 맞고 진정한 의지가 있다면 협상에 드는 시간과 노력은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지지층·집권당內 반발 무릅쓰고… 독일 회생의 발판 마련] - 슈뢰더 前독일 총리는 후임 메르켈때 개혁 열매… 내일 文대통령 만나기로 1998년부터 2005년까지 7년간 독일 연방총리를 지냈다. 2차 대전이 막바지에 달한 1944년,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소도시에서 태어난 그는 생부(生父) 얼굴도 기억 못 한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지 6개월 후 전사(戰死)했다. 어릴 적 축구장 한구석 가건물에서 어머니와 양부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철물점 점원으로 일하며 야간 직업학교를 다녔다. 일과 학업을 병행해 괴팅겐대학을 마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정치에 발 들인 건 18세 때 중도 좌파 사민당(SPD)에 입당하면서다. 1990년 니더작센주에서 8년간 주 총리를 지내고, 1998년 총선에서 녹색당과 연정(聯政)을 이뤄 집권에 성공했다. 2002년 총리로 재선됐지만 '어젠다 2010' 개혁으로 지지율이 급락해 2005년 조기 총선에서 앙겔라 메르켈의 중도 우파 기민당에 패했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정계를 은퇴했다. 독일에서 2006년 발간된 슈뢰더 자서전이 11년 만에 한국어판(메디치刊)으로 나왔다. 책 출간에 맞춰 방한한 슈뢰더 전 총리는 11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고 오후에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1000만원을 기부한다. 12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다. |
'時事論壇 > 經濟(內,外)'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앙시평] 경제학원론과 정반대의 위험한 소득주도성장 (0) | 2017.09.14 |
---|---|
<뉴스와 시각>주력산업 苦戰과 무기력 정부 (0) | 2017.09.13 |
[기자의 시각] SOC '삽질' 무시하지 말라 (0) | 2017.09.07 |
<時評>'복지 팽창' 예산으론 성장 못 이끈다 (0) | 2017.09.06 |
[朝鮮칼럼 The Column] 내가 꿈꾸는 일자리 예산 (0) | 2017.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