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9.07 손진석 경제부 기자)
'말뫼의 눈물'은 스웨덴 남부 도시 말뫼에 있던 초대형 조선소 크레인을 단돈 1달러에 울산 현대중공업에 넘겼던 아픔을
표현한 말이다. 조선업 붕괴로 23만명까지 줄었던 말뫼 인구는 요즘 34만명으로 다시 늘어났다.
회생의 비결은 7.8㎞짜리 외레순대교다. 바다 건너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을 연결하는 이 다리가 2000년 개통되자
하루 2만명 이상 양쪽을 오가는 교통 혁명이 이뤄졌다. 바다가 갈랐던 두 곳이 '외레순 클러스터'라는 이름의
단일 경제권으로 재탄생했다. IT, 에너지, 식품 기업들이 몰려들면서 양국 GDP의 11%가 이 지역에서 나오고 있다.
외레순대교는 복지 선진국이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으로 경제 도약을 일군 대표 사례다.
다른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스위스는 지난해 알프스산맥 지하로 57㎞짜리 세계 최장 터널을 이탈리아까지 뚫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영국은 요즘 고속철도를 놓는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내년엔 홍콩과 마카오를 잇는 55㎞짜리 강주아오(港珠澳)대교가 완성된다.
구룡반도 쪽 육로를 통해 3시간 넘게 걸리던 것이 30분으로 줄어들게 돼 남(南)중국 경제권이 천지개벽을 맞이한다.
반대로 우리 정부는 내년에 SOC 예산을 4조원 이상 깎는다.
역대 최대 폭의 삭감이다. 국토 개발론자를 '토건족'이라며 몰아붙이던 사람들이 집권했으니 복지 예산 마련을 위해 SOC를
제물로 삼는 건 예정된 수순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SOC 자체를 개발도상국이나 하는 구시대 유물인 양 깎아내린다.
그런 이들은 국가를 몸으로 치자면 SOC가 혈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도로·철도·항만은 사람과 물건을 실어나르며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성장 동력이다.
지금 집권 세력이 그토록 강조하는 복지 확충과 SOC가 서로 별개인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평균 통근시간(58분)은 OECD 평균(28분)의 2배를 넘어 세계 최장 수준이다.
도로·철도를 확충해 이동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여주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정부는 서울 집값을 우격다짐으로 누르고 있지만 GTX(광역급행철도)가 일찌감치 깔렸다면 경기도에서 서울로 접근이
쉬워져 집값을 분산시켰을 것이다. 부(富)의 집중을 완화하는 분배 촉진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낡은 도로·철도를 보수하는 투자를 게을리하면 위험이 가중된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나중에 고치려면 돈이 더 든다. 현 집권 세력은 야당 시절 "안전한 나라"를 외치지 않았던가.
고도 성장기 때 경부고속도로를 필두로 한 SOC 구축 사업은 나라를 일으키고 먹여 살린 동력이었다.
열심히 '삽질'한 덕에 나라가 빨리 성장했다. 지금도 200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건설업으로 생계를 꾸린다.
10억원의 수요가 창출됐을 때 고용 인원은 건설업이 13.8명으로 제조업(8.6명)보다 훨씬 많다.
일자리 늘리기를 국정 최우선 목표라고 해놓고 SOC를 외면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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