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조야에서 한때는 ‘엄포(bluffing)’로만 간주됐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군사적 행동이 이제는 하나의 확실한 옵션(선택)이라는 평가가 뚜렷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8월 초 ‘화염과 분노’에 이어, 지난 19일 ‘북한 완전 파괴’까지 언급한 이후 일촉즉발의 긴장감까지 감돌고 있다. 국내에서도 ‘4월 위기설’ ‘8월 위기설’이 감돌았지만, 팽배한 ‘안보 불감증’과는 확실히 궤가 다르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 18일 서울을 중대한 위험에 처하지 않게 하는 군사적 옵션이 존재한다고 밝혔을 정도다.
워싱턴에서는 단순한 위기감이 아니라 현실적 판단에 기초한 정책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지난주 유엔총회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전면에 나서 각각 ‘로켓 맨’ ‘늙다리’라는 원색적 비난을 주고받은 것은 전례가 없다. 마치 자동차 두 대가 서로를 마주 보고 돌진하는 영화 속 ‘치킨 게임’이 현실에서 재연되고 있는 모양새다. ‘매드 맨(미치광이)’ 전략, 또는 ‘벼랑 끝 전술’은 북한의 전매특허였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1969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베트남전 당시 사용했던 이 전략을 40여 년 만에 다시 꺼내 들면서 한반도 정국은 불확실성의 시대로 끌려들어 가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대북정책을 주도하는 ‘운전대론’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는 북·미 간 긴장 고조를 지켜보는 관찰자로 전락했다. 유엔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존재감은 미약했다. 문 대통령의 기조연설은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완전 파괴’ 발언에 묻혔고, 한·미 정상회담과 한·미·일 정상회의가 열린 지난 21일의 주인공도 제3국 기관·개인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 내용을 담은 제재를 전격 발표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미국 언론에서 ‘평화’를 30차례나 언급한 문 대통령의 연설에 관한 기사는 거의 찾기 어려웠다.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에 기반을 둔 대북정책이 국제사회의 큰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지난 21일 북한에 800만 달러 규모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집행하겠다고 결정했다. 금강산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도 여전히 장기적 의제에 올라 있다. 청와대가 “악의적 보도”라고 항의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대북 인도적 지원에 분노했다는 식의 일본 언론 보도가 끊이지 않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나마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 뒤 귀국하는 전용기에서 “지금은 북한에 대해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압박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올바른 상황 인식을 보인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적극적인 대북 독자 제재를 통해 미국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만 미국의 독자적 대북 군사 행동을 방지할 수 있고,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반대로 방관만 한다면 불똥은 경제적 분야로까지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것이다. 당장 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가 안전 문제로 내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 불참을 시사했다. 평창 올림픽 예매율은 현재 25%에 불과하다. 문 대통령이 직접 평창 올림픽 홍보에 열심히 나서도 아무 소용이 없다. 안보가 담보되지 않으면 경제성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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