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朝鮮칼럼 The Column] 웃음과 공포의 블랙코미디 같은 우리 사회

바람아님 2017. 10. 8. 08:14

(조선일보 2017.10.08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핵으로 민족 멸망 위기인데 우리 정치권이 몰두하는 건 역대 대통령들 과거사 시비
국민도 먹방에나 빠져드니 공포와 웃음 함께 터져 나와… 망국 피하려면 정신 차려야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추석 연휴가 끝나기 전 볼 만한 재미있고 우습고 무섭고도 진지한 영화 한 편을 고르라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닥터스트레인지러브'를 권하고 싶다. 1964년에 나왔으니 50년도 더 된 영화지만,

워낙 작품성이 뛰어나서 구닥다리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더 흥미로운 것은 냉전 시대 갈등을

다룬 작품인데, 마치 현재 한반도 상황을 보고 그린 듯 딱 맞아떨어진다는 점이다.

영화의 배경은 미국과 구소련이 핵 경쟁을 벌이던 시기이다.

1949년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하며 미국의 핵 독점이 깨졌다. 소련에 앞서가기 위해 트루먼 대통령은

수소폭탄 개발을 지시했고, 1952년에는 히로시마에 투하했던 원자폭탄의 700배 위력을 가진 무기 개발에

성공한다. 그러자 소련도 뒤이어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스푸트니크호 발사 성공으로 우주개발에서도

앞서나갔다. 미국인들은 이러다가 소련이 미국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소유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혔다. 미디어에서는

처음에 핵폭탄이 터져도 100명 중 97명은 살아남으니 핵전쟁은 그럭저럭 해볼 만한 게임이라고 주장했지만,

1961년 나온 보고서는 3000메가t급의 핵폭탄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인 80%가 사망한다고 추산하여 충격을 주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 사회에 근본적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우리는 더 나은 사회로 가고 있는가?

우리 사회의 기본 가치를 위협하는 적을 우리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가?

큐브릭 감독은 더 심층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인류는 과학기술 발전 덕분에 오히려 지구 전체를 파괴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획득했으나, 과연 그 힘을 통제할 지혜를

가지고 있는가? 이 심각한 주제를 다루기 위해 진지한 영화를 기획하던 큐브릭 감독은 차라리 블랙코미디를 만드는 게

낫겠다고 생각을 바꾼다. 미친 시대를 그릴 때에 가장 적합한 방식은 웃음과 공포를 뒤섞는 것이다.


영화 내용은 이렇다. 미국의 '미친 장군'이 공산주의자를 박멸하겠다며 핵 선제공격을 지시하자, 이에 맞서 자동적으로

핵 반격을 하는 소련의 '최후의 날 장치'가 작동하려고 한다. 인류 멸망의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이미 공격 지시를 받고

소련 영공에 들어간 미국 폭격기에 연락을 취해 핵 투하를 저지해야 한다.

그렇지만 폭격기, 공군기지, 백악관의 전쟁 상황실 사이에는 사고로 소통이 끊어진다. 무능력하기 짝이 없는 대통령은

소련 대사와 어린아이 같은 말싸움을 할 뿐이고, 소련 서기장은 술에 취해 정상적 통화가 불가능하며, 정치인들과 장군들은

사소한 문제로 서로 다투고 있다. 그러는 사이 폭격기는 임무를 완수하여 사방에서 핵폭탄이 폭발한다. 핵폭발의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마지막 장면에서 당시 유행했던 아름다운 노래 '우리 다시 만나리(We'll Meet Again)'가 흐른다.

노래 가사는 태양이 빛나는 날 우리 다시 만나자는 내용이지만 그런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현재 우리 분위기가 딱 이 모양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미국과 북한 사이에 오가는 말 폭탄을 듣고 오금이 저릴 정도로 공포를 느껴야 마땅하다.

수소폭탄이 언제 우리 하늘에서 터질지 모르고, '죽음의 백조'와 '모든 폭탄의 어머니'가 언제 저쪽 대지를 갈라놓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이런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참가해도 무사하겠냐고 묻는 프랑스 사람들이 훨씬 정상에 가깝다.

우리는 너무 담대한 걸까, 넋이 나간 걸까? 민족 멸망의 위기를 맞은 이때 정치인들은 전 대통령, 전전 대통령, 전전전 대통령의

잘못을 서로 캐고, 전전전전전전전 대통령 당시에 건국한 게 맞는지 아닌지 따지고 있다.

그런 건 역사가들에게 맡기면 될 일이다. 곤궁한 동포에게 인도적 지원을 하는 거야 좋은 일이지만, 영양부족 상태의 영·유아와

임산부 입에 들어갈 음식 비용을 빼앗아 핵·미사일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돈을 못 보내 안달할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군사비 아껴서 먼저 인민들 먹이라고 압박해야 옳다.

정치인들만 그러랴, 우리 모두 너무 무심하다.

저쪽은 우리에게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을 퍼부을 수단으로 미사일이 좋을지 잠수함이 좋을지 연구에 몰두할 때,

이쪽에서는 어느 집 파스타가 더 맛있는지, 전어는 회가 좋은지 구이가 좋은지 떠드는 '먹방'에 몰두하는 광경을 보면

공포의 전율과 웃음이 동시에 터지려 한다. 영화를 따로 만들지 않더라도 현재 우리의 정치판이나 사회 자체가 한 편의

블랙코미디다. 정말이지 건국일이 언젠지 따질 때가 아니라 망국을 피하도록 정신 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