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지난 5월 뉴욕주립대로부터 졸업식 스피치를 부탁받았을 때 이야기다. 무슨 말을 해줄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 끝에, 미국 학생들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해주기로 했다. 어차피 하버드대 졸업식 때 멋진 스피치로 뜨거운 박수를 받은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 또는 보스턴의 웰즐리대에서 시종일관 재치 있고 유머 넘치는 스피치로 학생들을 웃긴 힐러리 클린턴처럼 잘할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독특한 주제가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학위 복을 입고 대강당을 가득 채운 미국인 졸업생들에게 나는 한국의 미덕 중 하나인 스승에 대한 영원한 존경심을 소개해 주었다. 자기 예전 은사를 소개할 때, 미국인들은 “우리 선생님이셨어(He was my teacher.)”나 “예전에 우리 교수님이셨어(He is my former professor.)”처럼 과거형을 사용하지만, 한국에서는 “우리 선생님이셔”라고 언제나 현재형을 사용한다고 가르쳐 주었다. 졸업하면 사제(師弟) 관계가 끝나는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서 은사는 유효기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더니, 학생들보다 단상에 있는 총장, 부총장, 학장 등 보직교수들이 더 감동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나는 지금도 미국에 가면, 예전에 가르침을 받았던 은사들을 찾아가 인사를 드린다. 스승은 우리의 영원한 이정표이자 안내 성좌이기 때문이다. 나는, 은퇴해서 샌디에이고에 살고 계시는 은사 한 분도 LA에 가게 되면 2시간을 운전해서 찾아가 뵙는다. 그러면 그분이, “내가 40여 년 동안 대학에서 가르쳤지만, 학위 받고 나서 찾아오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 한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이기에 그런 좋은 풍습이 있느냐?”고 묻는다. 여러분도 졸업한 후에 은사들을 잊지 말고 가끔 안부도 전하고, 기회가 있으면 찾아뵙도록 해라 그랬더니, 처음 들어본 이야기라서 그런지 이번에는 학생들도 감동하는 것 같았다. 사실 속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생소하고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다음으로, 미국 졸업생들에게 자신이 태어난 곳에만 집착하지 말고 다른 곳으로도 애정을 확대해 보라고, 그래서 두 개의 고향을 가져보라고 충고했다. 나는 고향은 한국에 있지만,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뉴욕에서 보내서 뉴욕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한다고, 그러니 여러분들도 서울에 와보고 서울이 좋으면 서울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보라고 했다. 12세기 사상가 성 빅토르 휴의 말을 인용해, 자기 고향과 자기 조국만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 어린아이와 같다고, 세계 어디를 가도 자기 조국이나 고향처럼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강한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런 사람이 돼야, 장차 나라와 나라를 연결하는 ‘문화적 가교’와 ‘동서양의 통역자’, 그리고 한·미 간 ‘문화대사’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미국이 진정으로 위대해지려면 ‘미국 우선주의’보다는, 세계를 포용하는 진정한 글로벌 시티즌이 돼야 한다고도 말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영어 속담에는 ‘자주 만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는 말이 있지만, 한국인들은 한 번 친구가 되면, 어디에 있든지 결코 잊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한국의 시나 민요나 노래에는 멀리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주제가 많다고, 그러므로 한국과 미국이 비록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영원히 소중한 친구가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미국인들은 그런 한국적 정서에 감동하는 것 같았다. 졸업식이 끝나고 많은 교수와 학생들이 찾아와서, 변함없는 우정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와서 국내 대학에서 가르치는 미국인 교수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뜻밖에 모두 씁쓸하게 웃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그런 사제지간의 정(情)은 이제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국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미국인 교수가 시니컬하게 말했다. “한국에서도 사제지간이라는 게, 이제는 그냥 수업료 내고 지식을 배우는 계약관계가 돼버렸어요.”
나는 즉시 항의했다. “하지만 지난 스승의날에도 내 제자가 열 명이나 찾아와 점심을 대접하던데요. 제자들이 50대 초중반의 교수들인데도 말입니다.” 그러자 다른 미국인 교수가 지적했다. “하지만 그 제자들은 옛날 세대지요.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은 미국식 사제지간에 익숙해 있답니다.”
“또 한국인들은 너무 자기 나라와 자기 고향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요.” 다른 미국인이 지적했다. “그러면 세계의 시민이 되기 어렵지요.” 그러자 옆에 있던 또 다른 미국인 교수가 이렇게 말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요즘 한국인들은 멀리 떨어진 나라와의 우정은 별로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아요. 가까운 나라들과 훨씬 더 잘 지내는 것 같고요. 오래 안 만나서 그런지, 옛 우정을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미국인 교수들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미국 대학 졸업식에서 한국적인 것이라고 소개한 것들이 한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중 상당 부분은 미국이 진정으로 위대했던 시절, 내가 미국에서 배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그런 아름다운 풍습과 덕목은 이제 두 나라에서 다 사라진 셈이다.
사제지간의 정, 타인에 대한 이해와 포용, 그리고 국가 간의 동맹과 우정이 흔들리거나 사라진 시대에 갈등과 충돌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그런 시대일수록 동서양의 가교를 놓는 사람, 상호 이해를 돕는 유능한 통역자, 그리고 나라와 나라를 연결해주는 문화대사의 역할은 더욱더 중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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