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10.26 김강한 베를린 특파원)
지난 8월 말 우리 가족의 독일 정착을 도와주러 오신 장모님이 잠시 산책 나갔다가 노천카페 테이블 밑에서 튀어나온 개에게 허벅지를 물렸다. 개는 머리 높이가 성인 남자 허리에 올 정도로 컸다. 상처에선 피가 흘렀고 주변은 검붉게 멍이 들었다. 목줄을 하고 있었지만 견주가 줄을 느슨하게 잡은 것이 화근이었다.
견주인 독일인 50대 남성과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갔다. 그는 병원 수속을 대신 처리했고 자신의 인적 사항도 알려줬다. 의사는 광견병 예방 접종 여부를 확인한 뒤 장모님에게 파상풍 예방 주사를 놓고 상처 부위를 소독했다. 진료가 끝나자 견주는 "모든 손해는 보험회사를 통해 배상하겠다"며 사과했다. 실제 보험회사는 치료비는 물론이고 물질적 피해(찢어진 바지), 정신적 피해 등을 모두 산정해 보험금을 보내줬다.
이 사고를 경찰에도 신고했다. 독일에선 개에 물리면 재발 방지를 위해 경찰에 신고하는 게 상식이다. 경찰은 사건 발생 일시와 장소, 피해자와 견주의 신원, 병원명, 보험회사명, 치료 내용, 보상 내용 등을 상세히 물었다. 경찰 관계자는 "부주의하게 개를 관리한 혐의로 견주를 곧 경찰서로 불러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경찰은 사건 처리 안내 우편물을 보내왔다. '견주에게 사고 처리를 성실하게 했는지를 확인했고 외출 시 개에게 반드시 입마개 착용을 하라고 명령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24일 오전 서울의 한 공원 진입로에서 근처 상점 주인들이 키우는 개들이 목줄 없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장련성 객원기자
독일엔 반려견 860만마리가 산다. 유럽에서 가장 많다. 당연히 개에 물리는 사고도 종종 발생한다. 2000년 함부르크에서 6세 남자 아이가 맹견에 물려 숨지는 일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애완견 관리 규정이 크게 강화됐다. 아무리 순한 개라도 언제든 물 가능성이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된 것이다. 주(州)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견주는 반려견 정보를 반드시 당국에 등록해야 한다. 또 맹견을 키우려면 관련 지식과 소양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시험을 치러야 한다. 맹견은 반려견 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뒤 수의사 앞에서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보험에도 가입해야 한다.
개에 물리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보험회사·경찰·병원이 나서서 사고 후 전 과정을 처리하고 기록한다. 그래야 치료·보상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힐 수 있다. 피해자와 견주가 얼굴 붉히며 싸울 필요도 없고 이웃 간에 발생할 수 있는 일로 치부했다가 자칫 큰 피해로 번지는 일도 막을 수 있다.
최근 유명 식당 주인이 개에 물린 뒤 숨졌다. 사망 원인은 녹농균 감염인데 경찰도, 병원도 감염 경로를 모른다고 한다. 반려견 인구는 1000만명인데 보험 가입률은 0.1%에 불과하다. 사고 예방도, 사고 후 처리도 구멍투성이니 일반 시민은 개에 물리지 않도록 알아서 피해 다녀야 한다. 애견인이 죄책감을 갖지 않고, 시민도 과도한 공포심을 느끼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세밀한 반려견 관리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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