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7.11.24. 01:48
5년째 꼬인 한·일 관계, 아베 평창 초청이 해법
외교가엔 한·일 관계 ‘3년 주기설’이 있다. 역대 정권 출범 후 3년은 일본과 잘나가다가 2년 남겨두고 악화하는 패턴이 반복된다는 얘기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이 다 그랬다. 김영삼 대통령의 선제적 조치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담은 무라야마 담화가 나왔다. 김대중 대통령도 ‘21세기 신(新) 한·일 파트너십’ 시대를 선언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중엔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실리 외교’로 협력적 대일 관계를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의 교과서 왜곡, 독도 망언 등으로 후반기는 예외 없이 초강경으로 돌아섰다.
박근혜 대통령 때는 ‘초반 냉랭, 후반 고민’ 상황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2012년 8월) 여진 탓이다. 후반기 관계 회복에 나서며 체결한 ‘위안부 합의’가 국내의 역풍을 맞으며 양국은 더 멀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 그림자를 물려받았다. 아직은 냉랭하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는 “지금 정부는 전 정부를 교훈 삼아 역사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면 진전이 없다고 본다. 과거사와 안보·경제의 투 트랙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평했다. 문 대통령은 후보 때와 달리 ‘위안부 합의’ 파기를 공식 거론하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 셔틀 외교 복원에 합의했다. 이런 와중에 청와대는 지난 6일 한·미 정상회담 만찬장에 ‘독도 새우’를 올렸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소개도 했다. 인터넷상에선 “아베에게 한 방 먹였다”는 평이 대세였고 일본은 관방장관이 나서 불쾌감을 드러냈다. 양쪽의 감정싸움이 진행형이란 증거다.
한국민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폴란드 국민에게 무릎 꿇은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를 떠올리며 일본의 사과가 성에 안 찬다고 보지만 일본은 다르다. 한 일본 기자는 “솔직히 1990년대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업그레이드된 사죄를 요구하는 데 대해 일본 국민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골대(정권) 바꿔가며 한국이 공을 찬다”는 말도 있다고 했다.
북핵 문제를 중심으로 한 우리의 동북아 외교의 한 단면은 중국에 대한 과도한 기대다. 최근 중국과 사드 합의 과정에서 ‘3불’(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동맹, 미 MD 체계 편입하지 않는다) 입장을 천명한 것도 그래서일 테지만 한국 안보에 대한 중국의 간섭 루트만 열어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도 2015년 중국 전승절 ‘망루 외교’로 한반도 통일 문제까지 얘기했다며 잔뜩 기대했지만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미동도 않는 중국의 실체를 확인했을 뿐이다. 장기적, 안보 전략적 판단에 기초하지 않은 감정 외교의 한 단면이다. 역대 정권에서 일본과 갈등 상황일 때 중국과 항일 과거사 공동 전선을 펴는 모양새를 취하려다 중·일 정상의 관계 급진전 모드에 당혹해했던 경우도 많았다. 강대국들의 외교 셈법이 다름을 직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평창 겨울올림픽에 초청했다. 중국 국빈방문 후 일본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아베 총리를 평창에 초청하는 것도 방법이다. 선제적으로 움직이면 ‘위안부 합의’의 창조적 해법도 나올 수 있다. 외교는 51대 49 정도라도 이기기 위해 타협·조정하는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해서도 일본의 협력은 필수다.
김수정 외교안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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