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12.06 선우정 사회부장)
교통의 기본 윤리는 '强者의 弱者 배려'다
얼마 전부터 한국 사회는 개인의 윤리적 잘못을
국가 잘못으로 바꾸는 데 귀신 같은 재주를 부린다
선우정 사회부장
급유선 '명진 15호'는 13노트로 바다를 달렸다. 시속 24㎞에 해당한다.
인천항을 출발해 시화 방조제 앞바다를 지날 때 속도는 10노트였다. 물 밑에 암초가 널려 있는
협수로(狹水路)에서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그 시간 낚싯배가 자주 오가는 곳이다.
선장은 오른쪽 앞에서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는 낚싯배 '선창 1호'를 발견했다. 낚싯배 속도는 10노트.
이대로 가면 저 배를 따라잡아 충돌한다. 선장은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알아서 피해 가겠지.'
낚싯배에서 급유선 불빛을 처음 본 건 갑판에 있던 몇 사람이었다. 선내에선 보지 못했다. 그들이 불빛을 본 지 1분 뒤 충돌했다.
생존자는 "암흑 속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갑자기 나타나 선미(船尾)를 들이받았다"고 했다.
갑판 승객은 튕겨나갔고 선내 승객들은 바다에 갇혔다. 검은 바다로 사라진 낚싯배 선장은 이틀 뒤 파도에 쓸려온 갯벌의
주검으로 발견됐다. 9.77t과 336t. 낚싯배와 급유선은 34배 차이였다.
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급유선 선장이 생각했다는 '알아서 피해 가겠지'란 말을 되새겼다. 무서운 말이다.
트럭 운전자가 승용차에, 승용차 운전자가 이륜차에, 이륜차 운전자가 행인에게 흔히 하는 생각 아닐까.
고속도로에서 굉음을 울리며 끼어드는 질주 트럭을 만날 때마다 '죽기 싫으면 비켜' 하는 운전자의 고함을 환청처럼 듣는다.
뭍이든 바다든 교통의 기초 윤리는 '강자(强者)의 약자 배려'다. 급유선 선장에게 직업윤리가 있었다면 낚싯배를 본 순간
속도를 줄였을 것이고 15명을 바다로 몰아넣지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 사고 후 우리 사회가 달라진 게 없다고 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이번 사고에서 선박 개조, 과적(過積)과 같은 흔히 보던 불법은 발견되지 않았다.
출항 절차를 문제없이 마쳤고 승객은 구명동의를 입었다. 해경도 매뉴얼을 알고 있었고, 승객 구조에 머뭇거리지 않았다.
세월호 당시보다 나아졌다. 구조선 출동과 도착에 시간이 걸린 기술적 문제점, 중대형 배의 협수로 항행을 허용한 제도적
문제점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고치면 된다.
세월호 사고 후 거의 달라지지 않은 건 설비나 제도가 아니라 사람의 직업윤리다.
5일 오후 인천 서구 북항 관공선전용부두에서 중부지방해양경찰청 수중 과학수사요원들이 영흥대교 인근 해상에서
낚시어선 충돌사고를 낸 급유선 명진15호에 대한 수중감식을 하고 있다. /뉴시스
뭍에서도 우리는 대형 버스가 승용차를 깔아뭉개는 사고를 종종 접한다. 국산 버스의 성능은 세계적이다.
바퀴나 제동장치가 파열돼 사고가 일어났다는 얘기를 들어본 일이 없다. 십중팔구 버스 운전자의 졸음이 참사를 불렀다.
그때마다 대량 살상 무기로 변할 수 있는 대형차 운전자의 직업윤리를 주목한다.
규칙적으로 생활했는가, 음주로 무리는 안 했는가. 업무 수칙을 지켰는가. 하지만 취재는 늘 벽에 부딪힌다.
본인은 물론 동료 대부분이 모든 책임을 졸음을 유발하는 제도에 돌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언론은 처참하게 죽은 피해자의 억울함이 아니라 가해자가 소속된 집단의 제도적 처우 개선을 부르짖는다.
얼마 전부터 한국 사회는 개인의 잘못을 국가의 잘못으로 바꾸는 데 귀신 같은 재주를 부린다.
"언제까지 세월호 타령이냐"고 말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의 총체적 부실을 보여준 세월호 사고는 문제의 뿌리가 뽑힐 때까지 파고들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사고를 일으킨 선장과 선주를 단죄했다. 구조에 실패한 해경을 해체한 일도 있다.
느리게 반응한 청와대를 산산조각 냈다. 인적 청산에서 대단히 냉정했다.
이 정도 했으면 원점으로 돌아가 근본적 단계에 진입해야 했다.
승객을 죽음의 선실에 버리고 달아난 선장을 단죄했듯이 개인의 직업윤리를 개·보수하는 데 매달려야 했다.
사고 후 세월호를 다룬 청문회와 토론회는 수십 번 열렸다. 괴담을 둘러싼 논쟁은 지금도 끝이 없다.
수없이 해명한 '세월호 7시간'은 또 진상 규명의 도마에 올랐다.
그러면서도 직업윤리 문제를 한 번도 진지하게 논의한 적이 없다.
구(舊)정권의 정점까지 올라가 단죄하고 선체를 퍼올려, 남해에 수장된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신원(伸寃)하면 모든 게
저절로 풀린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렇지 않다.
이 나라의 직업윤리를 이대로 두면 크고 작은 비극은 언제든 반복된다.
성수대교 사고 당시 한국 사회는 이 문제를 정치 이슈로 만들지 않았다.
책임 추궁은 서울시장과 건설·관리에 직접 관련된 사람들에게 한정했다.
국제사회에 창피하지 않은 다리를 만드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 후 23년 동안 한국에서 교량 붕괴는 일어나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는 사고 직후부터 일부 세력에 의해 정치 이슈로 변했다.
앞으론 정권의 주도 아래 똑같은 논쟁이 반복된다.
익숙한 대형 사고도 뭍에서, 바다에서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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