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2017.12.04. 04:30
‘정의는 절대로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존 M 케인스가 저서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서 1차 세계대전에서 이긴 연합국이 독일이 감당할 수 없는 징벌적 배상금(250억달러)을 물리려는 시도를 논평한 표현이다.
영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파리평화회의에 파견된 그는 ‘유럽의 경제적 미래’ 관점에서 ‘(파리평화)조약에 뒤이어 벌어질 일들’을 더 걱정했다. 유럽 각국과 긴밀히 엮인 독일에 지급범위를 벗어나는 배상금을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유럽경제도 같이 망가질 것이므로 독일경제를 되살리면서 합리적 배상금(100억달러)을 매기자는 게 그의 논리였다.
연합국 집권자들이 이런 경제적 고려를 하지 않자 케인스는 런던으로 돌아와 이 책을 쓴다. 나중에 독일의 배상금 총액은 330억달러로 정해졌고 독일은 이 돈을 거의 갚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전쟁 전보다 통화량이 10배였던 독일은 배상금 부담에 돈을 더 찍다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맞았고 “절망과 광기의 구호가 무력감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선동할 것”이란 케인스의 예견처럼 파시즘의 발호로 이어졌다.
케인스 얘기를 길게 한 것은 비슷한 일은 어디서나 벌어지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종종 경제적 결과보다 대중의 인기와 지지를 염두에 둔 의사결정을 한다. 총선을 앞둔 당시 로이드 조지 영국 총리가 “독일로부터 최대한의 배상금을 받아내겠다”고 공표한 것처럼 말이다.
문재인정부의 몇몇 기업과 노동정책, 부동산정책 역시 그러하다. 정당성을 앞세워 표를 얻기엔 좋았을지 모르나 ‘뒤이어 벌어질 일들’은 아무도 원치 않는 상황이 될 수 있다.
편법을 써서 경영권 승계를 하는 것을 비롯해 운전기사든 변호사든 두드려 패는 일이 예사인 일부 재벌의 행태는 미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재벌 혼내기’와 ‘기업 혼내기’는 구분해야 한다. 불평등이나 부패와 같은 문제를 특정집단의 탓이라며 대중의 분노를 그들에게 돌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인에 손을 대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은 없고 결과는 더 나빠진다.
반도체 등 특정 부문을 제외한 제조업의 경쟁력 저하와 낮은 생산성, 셀 수 없이 많은 규제 등을 그대로 두고 고소득 일자리를 만들 수는 없다. 조직화한 소수 정규직 노조 위주로 노동정책이 돌아가는 한 일자리는 늘지 않을 것이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면 물가상승 속도가 더 빨라져 서민들의 생활고가 가중될 것이다. 급작스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민간부문에서 일자리 축소로 나타나고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는 민간부문을 구축할 것이다. 법인세를 올린다고 해서 일자리가 생기거나 소비자들이 이익을 보지는 않을 것이다.
강남과 같은 인프라를 갖춘 고급 주거지를 공급하지 않고 ‘재건축조합원 지위 양도금지’와 같은 방식으로 매물의 씨를 말리고 서민주택을 더 지으면 희소성 덕분에 강남 집값은 더 오르고, 집값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경제적 격차가 더 커진다.
결국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은 더욱 궁벽한 처지로 내몰릴 것이다. 물론 그때도 재벌 탓, 다주택자 탓, 상대 진영의 정치인 탓 등으로 몰거나 언론 탓을 하며 대중의 카타르시스를 자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비극이다.
케인스는 “인간은 스스로를 빈곤하게 만들고 서로를 빈곤하게 만들 방법을 고안해내고, 개인적 행복보다 집단적 증오를 더 선호한다”고 했다. 이를 피하고자 한다면 정권에 손해가 되더라도 국민에게 이익이 되도록 잘못 채운 단추를 풀고 다시 채워야 한다. 정의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강기택 경제부장 acek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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