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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의 시시각각] 영어 안 되는 코드 대사 내보내는 문 정부

바람아님 2017. 12. 16. 10:13

중앙일보 2017.12.15. 01:53

 

북핵 위기 꼭짓점 치닫는데
색깔로만 이겨낼 수 있겠나
최상연 논설위원
조총이 일본에 전해진 건 1543년이다. 태풍으로 표류하던 난파선의 포르투갈 상인이 넘겼고 오다 노부나가를 거치며 공포의 게임 체인저(판도를 바꿀 계기)가 됐다. 되새길 건 이 신병기가 1592년 임진왜란 전에 조선에 도착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선조 수정실록’엔 1589년 대마도주가 조총 수삼 정을 바쳤다고 적혀 있다. 류성룡의 ‘징비록’엔 1590년 조선통신사가 일본에서 갖고 왔다고 기록했다. 어느 쪽이든 가공할 성능을 모두가 눈으로 확인한 뒤 조선 조정은 조총을 군기시 창고에 조용히 모셔 두도록 결정했다.


그런 안이한 ‘설마 정치’로 인구의 3분의 1이 죽고 경작지는 3분의 2가 황폐화됐다. 지금은 북한 핵이다. 불과 서너 달 후면 미사일에 실을 수 있는 작고 가벼운 핵무기가 북한에 실전 배치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핵무기를 싣고 날아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은 이미 지난달 시험 발사를 마쳤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3개월 정도면 최종 완성될 것으로 본다고 한다. 과거 핵 위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엄중한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형식적으론 외교 수모를 당했고 내용적으론 성과가 크지 않다. 중국의 한국 길들이기가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중국이라면 벌벌 떠는 문 정부의 코드 외교도 한몫했다. 3불(不)에 발목 잡혀 ‘중국 안보 이익에 침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하겠다’는 대통령 발언까지 나왔다. 사드는 북핵 때문에 생겼고 북핵을 막지 못한 건 중국에도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따지고 요구할 게 많았는데 기대에 못 미쳤다.


왜 그런 것인가. 근본적으론 노무현 시대의 대북관과 북핵 프레임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북핵과 관련해 “외부 위협에서 자신을 지키는 억제 수단이란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땐 핵실험 전이고 ICBM도 없었다. 이후 여섯 차례 핵실험으로 ‘핵무기를 꽝꽝 생산할 수 있게 된’ 북한이다. 인식과 해법이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도 ‘북핵은 북·미 문제’란 거고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때문’이란다. ‘대미 협상용’이란 노 전 대통령의 인식과 다를 게 없다.


그러니 “한국과 중국은 북핵 문제에 관해 쌍중단에서 입장이 똑같다”는 해괴한 발언이 대통령과 중국을 함께 방문한 정권 실세의 입에서 나온다. 원인이고 재앙인 북핵과, 대응이고 합법인 군사훈련이 왜 쌍중단 대상이란 건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레드라인은 안 넘었다’는 정부에 ‘화성-15형은 장거리 미사일’이란 외교장관이다. 오죽하면 ‘타조처럼 머리를 모래에 파묻고 있다’는 타박이 나왔을까.


한국 정치에서 북한 문제는 이념의 전쟁터다. 자주파와 동맹파가 가장 심각하게 부딪친 건 노무현 정부 초기다. 그래도 그땐 미국과 통한다는 반기문 외교장관, 한승주 주미대사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주파에 대화파 일색인 외교안보팀이 중국 등 4강에 이어 주요국 대사로 코드 낙하산을 늘리고 있다. 대사 임명 전엔 영어 시험이 필수다. 노무현 정부 때 생겼다. 하지만 문 정부 코드 인사들에겐 면제라고 한다. 총 쏠 줄 모르는 전투병을 전쟁터로 보내는 셈이다. 군에선 장군 승진 인사가 두 달 가까이 미뤄지고 있다. 코드 검증 때문이란 소문이 났다.


북한 핵은 조총보다 복잡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쨋든 끝을 향해 가파르게 치닫는 건 분명하다. 비상한 위기를 감당하고 넘어설 경험과 지혜라면 모두 모아야 한다. 주변 강국의 거센 도전을 코드와 색깔만으로 이겨내겠다는 건 조총을 군기시에 처박은 조선의 한심했던 당쟁과 다를 게 없지 않나.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