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남북대화가 열리려 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북한 대표단의 평창동계올림픽 파견과 이를 위한 남북 당국회담 개최를 제의했고, 우리 정부는 이를 즉각 환영하고 오는 9일 남북 고위급 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의제와 일정, 대표단 구성 등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남북대화가 열릴 게 확실해 보인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기대 못지않게 우려도 크다. 엄중한 한반도 안보 상황에서 북한의 의도와 전략을 간파하지 못한 채 우리의 부푼 기대 때문에 북한에 이용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모처럼 개최될 남북대화가 이런 우려를 불식하고 부푼 기대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우리 정부 당국이 다음의 ‘하지 말아야 할 3가지(3不)’를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첫째, 남북대화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분위기를 약화시키는 구실이 돼선 절대 안 된다. 북한의 비핵화 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까지는 강력한 제재와 압박이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은 비핵화 협상에 결코 응하지 않을 것이다. 대북 제재와 압박 효과는 이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번에 북한이 우리와 대화하겠다고 나오는 것도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이 북한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통해 국제사회의 이런 분위기를 약화시키고, 잘하면 우리로부터 경제적 지원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북한은 계산하는 것이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를 요청할 수도 있고, 대규모 인도적 지원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런 북한의 요구에 순진하게 넘어가면 북한의 비핵화 목표는 물거품이 될 뿐이다.
둘째, 북한의 핵·미사일 완성을 위한 시간벌기에 남북대화가 악용돼서도 안 된다. 미국 국방 당국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완성하는 데 불과 몇 개월 정도의 시간만 필요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무장 완성을 막는 데 2018년 초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시기에 남북대화를 앞세워 북한이 시간을 벌 수 있다면, 북한으로선 최선이고 미국으로선 낭패다. 남북대화가 북한에 의해 이렇게 악용되는 것을 막으려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우리나라와 국제사회의 단호한 의지가 남북대화를 통해 정확하고 강력하게 전달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남북대화는 북한의 거짓 평화 공세를 정당화시켜줄 위험이 있다.
셋째, 남북대화를 통해 한·미 관계를 이간시키려는 북한의 계략에 넘어가서도 안 된다. 북한의 핵·미사일은 대한민국의 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지만,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도 중대한 도전이다. 날로 부상하는 중국의 강대국화에 맞서 미국은 동북아의 미군 전력을 유지하려 한다. 이에 비해 중국은 이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려 한다. 결국,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중 양대 강국의 세력 경쟁 와중에 휩싸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간 신뢰가 깨지고 한·미 동맹의 약화 조짐이 나타나면, 우리 뜻과는 전혀 관계없이 한반도 전쟁의 가능성이 매우 커질 수 있다.
사실 북한의 평화 공세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우리가 이에 대응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란 점도 예견돼 왔다. 북한의 대화 제의를 전격 수용한 정부로서도 걱정이 매우 클 것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냉엄한 국제관계 협상의 기본에 충실하고, 신중하면서도 당당하게 남북대화에 임해야 한다. 어떻게든 대화 국면을 유지하고 이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내겠다는 목표에 집착하게 되면 자칫 큰 낭패를 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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