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 2018.01.24 03:13
매일 耕作하는 고통과 기쁨은 농부와 作家 모두 마찬가지
가상 화폐 투기 狂風 일지만 삶에 일확천금은 있을 수 없어
서른 살 이후로는 그런 짓이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하기로 했다. 바로 새해 다짐. 그것도 마음속으로만 하지 않고, 이 칼럼에서 공개하기로 했다. 그래야 지킬 수 있으니까. 올해 나는 농부(農夫)처럼 살기로 했다. 이게 다 '꽃 농부'와의 인연(因緣) 때문이다.
작년 가을에 지방의 문학 행사에 초청되어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작업복을 입은 나이 지긋한 농부 한 분이 내 사인을 받고 싶은데, 시골 서점에서 내 소설책을 구하지 못했다고 하셨다. 작업 중에 짬을 내서 오신 그분이 너무 고마워서, 집에 돌아와서 사인한 내 소설책 두 권을 보내 드렸다.
그분이 감사의 답례로 꽃 농장에서 키우는 색색가지 '비단꽃향무' 여섯 단을 택배로 보내셨다. 그 이후로도 차례로 해외로 수출하는 분홍색 소르본느 백합, 리시안셔스, 흰 시베리아 백합 등 꽃 선물을 택배로 풍성하게 보내셨다. 그 덕에 나는 늦가을부터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온 집안을 꽃 대궐처럼 해놓고 살았다. 처음엔 너무 행복한 나머지, 나만 누리는 행복에 죄책감마저 들었다. 어머니와 지인과 친구들에게 꽃을 나누니 행복한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 꽃 받은 사람들이 보낸 꽃 사진들을 꽃 농부에게 카톡으로 보내면 그분도 행복해했다.
"농사일이 하루하루 너무 힘들지만, 제가 키운 꽃들이 어떤 주인을 만나 행복할까 늘 상상해요."
농부의 그 말에 세게 감전(感電)됐다. 사실 농부와 작가는 하는 일이 비슷하다. 그는 창작의 고통과 순수한 기쁨을 말하고 있는 거였다. 그동안 게으르고 이러저러한 핑계로 나는 몇 년 꽃을 피우지 못한 농부였다. 영감(靈感)이 오기만을 기다렸던가. 부끄러운 반성이 폐부(肺腑)를 찔렀다. 하루하루 A4 용지만큼만 땅을 경작하리라. 거기 씨 뿌려 꽃 같은 작품을 생산할 수 있다면! 독자들의 가슴에 한 다발 꽃으로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런 간절한 소망이 피어났다.
평생 치열하게 성실하게 글밭을 가꾸며 아름다운 작품들을 생산해내고 떠난 두 선배가 생각났다. 마침 지난 22일은 내 여고의 대선배이신 박완서 선생님의 7주기 기일(忌日)이었다. 그는 생전에 '호미'라는 산문집에서 작가의 삶을 회고하셨다.
"돌이켜보니 김매듯이 살아왔다. 때로는 호미자루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후비적후비적 김매기를 멈추지 않았다."
실제로 말년에 작가 겸 농부의 삶을 살았던 아치울의 노란 집 마당에서 키운 꽃들을 일일이 보여주시고, 손수 만드신 살구잼 한 통을 내게 선물로 주셨던 기억이 난다.
지난 18일은 작년에 갑자기 떠난 정미경 선배의 1주기였다. 대학 1년 선배로 자주 통화하고 재작년 연말에 새해 덕담(德談)까지 문자로 주고받은 지 20일도 되지 않아 운명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살림이면 살림, 소설이면 소설. 선배는 완벽주의자였다. 그 와중에 취재는 어찌 하는지, 소설에서 기막히게 현장감을 잘 살려냈다. 한두 번 물어도 "으응, 그거 영업비밀이야"라며 웃었다.
작년 여름에 장편소설 '가수는 입을 다무네'에 이어 1주기에 맞춰 장편 '당신의 아주 먼 섬'과 유고(遺稿) 소설집 '새벽까지 희미하게'가 출간됐다. 혼신의 힘으로 꽃피운 마지막 작품들이다. 그것은 소금꽃 같은 걸까. '당신의 아주 먼 섬'에서 정모가 염전의 소금꽃을 가리키며, "징허게 모인 기운이 터져 나오면 그게 꽃이다."라고 했던.
그런데 나의 새해 다짐이 무색하게, 연일 가상 화폐 광풍이 이어지고 정부의 규제에 찬반 논란이 분분하다. 한창 성실하게 일해야 할 젊은이들이 일확천금과 대박의 꿈을 안고 인생역전을 노리다니. 인생에 '잭팟(jackpot·거액의 상금, 대박)'은 없다. 온종일 가상 화폐 시세만 들여다보는 '비트코인 좀비'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지난 20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가상 화폐 규제 반대' 정부는 국민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행복한 꿈을 꾸게 해본 적 있습니까? "라는 글이 청원 참여 22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취업과 결혼과 내 집 마련이 요원한 희망 없는 청춘들의 비상구 없는 현실이 또한 안타깝다.
작년 가을에 지방의 문학 행사에 초청되어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작업복을 입은 나이 지긋한 농부 한 분이 내 사인을 받고 싶은데, 시골 서점에서 내 소설책을 구하지 못했다고 하셨다. 작업 중에 짬을 내서 오신 그분이 너무 고마워서, 집에 돌아와서 사인한 내 소설책 두 권을 보내 드렸다.
그분이 감사의 답례로 꽃 농장에서 키우는 색색가지 '비단꽃향무' 여섯 단을 택배로 보내셨다. 그 이후로도 차례로 해외로 수출하는 분홍색 소르본느 백합, 리시안셔스, 흰 시베리아 백합 등 꽃 선물을 택배로 풍성하게 보내셨다. 그 덕에 나는 늦가을부터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온 집안을 꽃 대궐처럼 해놓고 살았다. 처음엔 너무 행복한 나머지, 나만 누리는 행복에 죄책감마저 들었다. 어머니와 지인과 친구들에게 꽃을 나누니 행복한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 꽃 받은 사람들이 보낸 꽃 사진들을 꽃 농부에게 카톡으로 보내면 그분도 행복해했다.
"농사일이 하루하루 너무 힘들지만, 제가 키운 꽃들이 어떤 주인을 만나 행복할까 늘 상상해요."
농부의 그 말에 세게 감전(感電)됐다. 사실 농부와 작가는 하는 일이 비슷하다. 그는 창작의 고통과 순수한 기쁨을 말하고 있는 거였다. 그동안 게으르고 이러저러한 핑계로 나는 몇 년 꽃을 피우지 못한 농부였다. 영감(靈感)이 오기만을 기다렸던가. 부끄러운 반성이 폐부(肺腑)를 찔렀다. 하루하루 A4 용지만큼만 땅을 경작하리라. 거기 씨 뿌려 꽃 같은 작품을 생산할 수 있다면! 독자들의 가슴에 한 다발 꽃으로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런 간절한 소망이 피어났다.
평생 치열하게 성실하게 글밭을 가꾸며 아름다운 작품들을 생산해내고 떠난 두 선배가 생각났다. 마침 지난 22일은 내 여고의 대선배이신 박완서 선생님의 7주기 기일(忌日)이었다. 그는 생전에 '호미'라는 산문집에서 작가의 삶을 회고하셨다.
"돌이켜보니 김매듯이 살아왔다. 때로는 호미자루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후비적후비적 김매기를 멈추지 않았다."
실제로 말년에 작가 겸 농부의 삶을 살았던 아치울의 노란 집 마당에서 키운 꽃들을 일일이 보여주시고, 손수 만드신 살구잼 한 통을 내게 선물로 주셨던 기억이 난다.
지난 18일은 작년에 갑자기 떠난 정미경 선배의 1주기였다. 대학 1년 선배로 자주 통화하고 재작년 연말에 새해 덕담(德談)까지 문자로 주고받은 지 20일도 되지 않아 운명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살림이면 살림, 소설이면 소설. 선배는 완벽주의자였다. 그 와중에 취재는 어찌 하는지, 소설에서 기막히게 현장감을 잘 살려냈다. 한두 번 물어도 "으응, 그거 영업비밀이야"라며 웃었다.
작년 여름에 장편소설 '가수는 입을 다무네'에 이어 1주기에 맞춰 장편 '당신의 아주 먼 섬'과 유고(遺稿) 소설집 '새벽까지 희미하게'가 출간됐다. 혼신의 힘으로 꽃피운 마지막 작품들이다. 그것은 소금꽃 같은 걸까. '당신의 아주 먼 섬'에서 정모가 염전의 소금꽃을 가리키며, "징허게 모인 기운이 터져 나오면 그게 꽃이다."라고 했던.
그런데 나의 새해 다짐이 무색하게, 연일 가상 화폐 광풍이 이어지고 정부의 규제에 찬반 논란이 분분하다. 한창 성실하게 일해야 할 젊은이들이 일확천금과 대박의 꿈을 안고 인생역전을 노리다니. 인생에 '잭팟(jackpot·거액의 상금, 대박)'은 없다. 온종일 가상 화폐 시세만 들여다보는 '비트코인 좀비'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지난 20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가상 화폐 규제 반대' 정부는 국민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행복한 꿈을 꾸게 해본 적 있습니까? "라는 글이 청원 참여 22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취업과 결혼과 내 집 마련이 요원한 희망 없는 청춘들의 비상구 없는 현실이 또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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