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이훈범의 시시각각] 탕아와 경찰

바람아님 2018. 2. 14. 09:22

중앙일보 2018.02.13. 01:34


빚 잔뜩 지고 가족 찾는 탕아보다
집에 돌아가게 만든 경찰 믿어야
이훈범 논설위원
초등학교 4학년 딸·아들 쌍둥이를 둔 지인이 최근 깜짝 놀랐다고 했다. 쌍둥이 둘 모두 통일에 반대하더란 거였다. “우리가 너희만 할 때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불렀다”고 말해줬더니 “왜 소원을 아깝게 통일 같은 것에 쓰냐. 내 소원은 나를 위해 쓰고 싶다”고 하더란다. 통일에 반대하는 이유는 이랬다. “수영도 못하면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겠다고 뛰어들면 다 죽잖아요. 구명조끼를 던져주거나 119에 신고하는 게 낫죠.” 그러더니 점잖게 이르더란다. “영국과 미국·호주는 같은 민족이었지만 종교나 사회 문제로 분리돼 나와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고 지금 세 나라 모두 잘사는 나라가 됐어요. 같은 민족이고 같은 언어를 쓴다고 해서 반드시 한 나라로 살아가야 한다는 건 글로벌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에요.”


지인도 그랬지만 극도의 개인주의와 현실주의, 조금은 지나친 듯한 코스모폴리타니즘에 혀를 찰 일만은 아니다. 분명 감상에 빠진 어른들보다 더 어른스러운 현실 인식이 담긴 말이다. 통일이 되면 좋겠지만 과연 우리가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느냐는 물음이다. 더욱 분명한 것은 이게 쌍둥이들만의 생각은 아니란 거다. 이 땅의 많은 10대, 20대 젊은이들이 같은 생각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조금은 뜬금없던 북한 손님들은 남한 체류 일정 내내 민족과 통일을 외쳤다. 지금도 왜 남한 공연을 한 건지 이해가 안 되는 북한의 악단은 ‘가요무대’의 추억을 소환하며 통일을 노래했고, 목디스크 환자처럼 턱을 내릴 줄 모르던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통일의 새 장을 여는 주역이 되시라”는 파격적 인사를 남기기도 했다. 북한 응원단 역시 ‘우리 민족끼리’를 쉴 새 없이 외쳤지만 어쩐지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만큼 시대가 바뀌고 세상도 변했으며, 무엇보다 사람들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국뽕’(국가+히로뽕)에 넌더리를 치는 세대에게 ‘남북단일팀’은 감동보다는 불공정이고, 방탄소년단이 세계를 휩쓰는 마당에 북한 사람이 남한 가요를 부른들 느낌 없는 ‘흘러간 옛 노래’에 불과한 것이다. ‘실세 특사’ 김여정이 참신하긴 했다 해도 어제까지 ‘불바다’를 외치다 오늘 민족과 통일을 말하니 진정성이 느껴질 리 만무하다. 집 나갔던 망나니 작은아들이 빚만 잔뜩 지고 돌아와서 ‘가족의 중요성’을 외치는 것과 무에 다르랴. 이런 떨떠름한 감정들은 10대, 20대뿐 아니라 50대 중년들에게까지 광범하게 스며들어 있다. 평화 공세 뒤엔 으레 뒤따랐던 숱한 도발들을 봐온 학습효과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가 들떠서 섣부른 행동에 나설까 걱정스럽다. 공연 당일 서현에게 출연을 요청해 북한 가수들과 ‘우리의 소원’을 부르게 했다는 청와대인지라 더욱 그렇다. 유엔의 대북제재가 효과를 거두고 있고 미국의 강경 드라이브를 북한이 의식하는 게 분명해 보이는 지금, 또다시 정부가 북한에 탈출구를 열어주는 우를 범할까 두려운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미 동맹은 그야말로 끝장이다. 미국의 이해와 협조 없는 남북 정상회담은 최상의 결과가 일회성 이벤트다. 이후 심각한 동맹의 균열이 불가피하다. 문 대통령이 방북 제안에 “여건을 만들어…”라는 조건을 달고 북한에 미국과의 대화를 촉구한 것도 그 점을 인식해서일 터다. 하지만 사드 때도 그랬듯 문 대통령의 태도가 확고하고 일관되지 않다는 게 문제다.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우려가 그래서 더 섬뜩하다. “미국과 ‘졸혼(卒婚)’ 절차를 밟고 있는 거 같아.” 지금은 돌아온 탕아보다 그를 집으로 돌아가게끔 만든 경찰을 더욱 신뢰할 때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