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8.02.14. 01:01
김정은 선의가 아니라 경제제재
문 대통령을 평양에 초청할 만큼
북한 상황이 절박해졌다는 신호
경제제재 완화는 '트로이 목마'
가면 뒤의 김정은 민낯 직시해야
북핵 문제 해결이 최우선 정책 순위가 된 이상 미국이 이를 대충 덮고 지나갈 가능성은 작다. 미국은 군사조치까지 동원해서라도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된 빅터 차를 낙마시킨 것이다. 군사옵션을 단지 협상카드로만 쓰려 했다면 ‘코피 터뜨리기’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그를 낙마시킬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이는 상황에 따라 미국이 실제로 군사조치를 시도할 수도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다만 현 단계에선 강력한 대북제재를 통해 북한을 비핵화 협상으로 끌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평창올림픽으로 마련된 남북대화 분위기가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북·미 대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그러나 ‘남북대화-북한 도발 중지’는 가장 약한 고리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지하는 대가로 ‘제재 완화와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원칙을 철저히 지키려는 미국 대신 남한이 주도적으로 나서기를 원할 것이다. 남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자체를 완화할 힘은 없다고 하더라도 여러 명분을 만들어 제재에 구멍을 만들어 주기를 기대할 수 있다. 한·미 군사훈련도 시늉만 내도록 요구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 정권의 행태를 철저히 학습해야 한다. 2014년 아시아게임 폐막식 때 북한 실세 3인방이 갑자기 한국을 방문한 것도 경제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북한 수출의 40%를 차지하던 무연탄 가격이 2011년에 비해 2014년엔 절반으로 떨어졌다. 필자의 추정에 따르면 경제성장률도 2012~2013년 평균 3% 정도에서 0%로 추락했다. 경제와 외화벌이에 비상등이 켜지자 일본·러시아의 관심을 타진하다가 실패하니 한국에 온 것이다. 이번 평창올림픽 참가도 마찬가지다. 북한 참가의 일등 공신은 김정은의 선의가 아니라 경제제재다. 한국이 대화만을 통해 참가를 설득했다면 북한은 막대한 경제적 지원과 정치적 양보를 요구했을 것이다.
김정은은 김여정까지 투입해 제재의 판을 크게 흔들어 보려 한다. 그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던 남한과의 대화는 물론 문재인 대통령을 북한에 초청하기까지 했다. 북한 상황이 절박해졌다는 신호다. 그러나 북한이 요구할 경제제재 완화는 ‘트로이 목마’다. 이를 수용한다면 한국이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북한 선수와 응원단에 대해선 마음을 더 열자. 포용하고 힘껏 격려하자.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고 자유와 번영의 길이 있다는 영감을 선물로 주자. 그러나 김정은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서는 냉정해야 한다. 핵 문제가 해결의 길에 들어서지 않는 한 평창 이후도 이전과 달라질 것이 없다. 가면 뒤 김정은의 민낯을 바로 봐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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