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活文化/세상이야기

기부하고 싶어 석사받은 아흔살 유쾌한 인생

바람아님 2018. 2. 24. 16:00

매일경제 2018.02.23. 16:09

 

숙대서 국내 '최고령' 석사학위 받은 우제봉 할머니
젊은 친구들, 왜 이리 못났지 자책말고 도전하는 삶 즐겨야
"집에서는 안 그런다는데 학교에서 이렇게 까부는 걸 보니 어머니가 엄청 엄하신 모양이구나."

고교 시절 담임 선생님은 매일같이 학교 복도를 뛰어다니던 그를 말리느라 애를 먹었다. 때론 벌을 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활발하고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끼' 많은 여고생에 대한 애정 어린 격려였다.


엄한 부모님의 영향에 끼를 제대로 발산하지 못한 채 젊은 시절이 지나갔다. 방과 후 영화관에 가는 것도 어려웠고, 친구 집에 놀러가는 건 1년에 한 번도 채 안 됐다. 24세 때 들어간 시댁에서는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제대로 앉을 새도 없이 일했다. 시부모, 시조카 등 시댁 식구만 10명이 넘었다.


3살짜리 막내 시조카가 성북구 6간짜리 한옥집 마루를 흙발로 더럽혀 놓으면 걸레로 닦고, 또 더럽히면 닦는 것이 일상이었다. 다만 그런 삶이 힘들진 않았다. 그 시절은 다들 그렇게 살았을 거라 여겼다. 그렇게 할머니가 됐다.

국내 최고령 석사 우제봉 할머니(90) 얘기다. 우씨는 23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에서 열리는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특수대학원 실버비즈니스전공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석사 논문 '실버 소비자의 라이프 스타일과 인지연령에 따른 의류점포 선택 요인에 관한 연구'는 우수논문상의 영예도 얻었다. 우씨는 학위수여식을 앞두고 매일경제와 만나 "예전부터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옷이 다양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며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배우면 직접 만든 옷을 노인들에게 제공하고 수익으로 기부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전했다.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건 남편·자식 뒷바라지로 반백 년을 보낸 뒤였다. 꾸준히 병원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봐왔던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었던 것이 계기였다. 그는 "엄하지만 유복한 가정에서 돈 걱정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밖을 나가보니 불쌍한 사람이 너무 많았다"며 "결정적으로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부터 불우한 이웃을 돕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기부할 돈이 없었다. 자식에게 손을 빌려 기부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여겼다. 장고 끝에 선택한 건 대학원. 어릴 때부터 관심 있었고 자신도 있었던 '옷 만들기'에 승부를 걸어보기로 했다.


그는 "가정 형편이 넉넉해 결혼 후에도 옷만큼은 신경 쓰고 살았다"며 "내가 젊었을 땐 옷을 지어서 입던 시대였는데 형편이 안돼 옷을 제대로 못 입는 사람들에게 직접 옷을 지어다 입히기도 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2014년 우씨는 85세 나이로 숙명여대 특수대학원 실버비즈니스 학과 석사 과정에 입학해 최고령 대학원 신입생으로 화제를 모았다. 숨겨져왔던 할머니의 끼가 본격적인 학구열로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입학 후 우씨는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공부에 쏟았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새벽 기도를 하고 자식들 식사를 차려주는 시간만 예외였다. 도서관에서 인터넷 강의 듣길 반복했고 2주에 한 번씩 학교에도 꼬박꼬박 참석해 수업을 듣고 두 달에 한 번씩 주어지는 독후감도 모두 냈다. 논문을 쓰기 위해 반드시 들어야 하는 영어와 통계학 시험에선 심지어 만점을 받았다. 학기 중이 아닌 방학 때는 특강을 듣고 '치매예방 관리사' '노인집단상담사' 자격증도 땄다. 우씨를 지도한 김숙응 숙명여대 교수는 "항상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강의를 들으시고 필기까지 하신다"며 "목표 의식이 뚜렷하시고 열정적이라 젊은 학생들에게도 모범이 됐다"고 말했다.


우씨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자존감을 버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상이 나를 못나게 봐도 '나는 왜이리 못났지'라고 자책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요즘은 이런저런 이유로 직장도 결혼도 다 포기한다고 하는데 마음가짐만 다잡으면 시간을 허투루 쓸 수가 없다"고 조언했다. 우씨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한 손에 책과 신문을 놓지 않았다. 할머니가 입고 있던 남색 체크무늬 치마는 본인이 직접 만든 옷이었다.


[강인선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