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책·BOOK

지식의 착각/ 쇼와 유신/ 복수의 심리학/ 한국사람들

바람아님 2018. 3. 10. 13:57


위대해 보이지만 한없이 무지한 인간

(조선일보 2018.03.10 유석재 기자)


'지식의 착각'지식의 착각

스티븐 슬로먼·필립 페른백 지음|문희경 옮김|세종서적|374쪽|1만8000원


1954년 3월 1일 태평양의 비키니 환초에서 '캐슬 브라보'암호명이 붙은 핵폭발 실험이 이뤄졌다.

그리고 그 엄청난 폭발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방사능 오염을 초래했다.

당초 이 열핵융합 폭탄을 만든 과학자들은 폭발력을 히로시마 원폭의 300배 정도로 예상했는데,

실제는 1000배에 가까운 15메가톤이었다.

주요 성분을 잘못 이해했던 탓인데, 바람의 방향을 예상하지 못해 피해가 더욱 커졌다.


미국의 인지과학자인 저자들은 이 사건에 인간의 본질적인 역설이 담겼다고 말한다.

"인간은 천재적이면서 서툴고, 명석하면서 어리석다"고 말이다.

사람들은 보통 스위치를 누르면 전등에 불이 켜지는 작동 원리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서도 '다 안다'고 착각한다.

그래도 살아가는 데 문제없는 지식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인지과학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고찰하는 이 책은 "마음은 몸의 도움을 받고, 사회에 깃든 지식에 의지하며, 주변 사람들이

가진 정보에 기대 행동으로 나아간다"고 말한다.

마치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게 진정 아는 것'이라는 '논어' 문장에 대한 긴 주석처럼

느껴지는 책이다.

실패한 쿠데타, 침략의 이념이 되다

        

(조선일보 2018.03.10 이한수 기자)


'쇼와 유신'쇼와 유신|한상일 지음|까치|344쪽|2만원


1936년 2월 26일 오전 5시. 도쿄 시내 곳곳에서 총성이 울렸다.

49년 만의 폭설이 내린 어두운 새벽이었다.

'혁명군' 1500명을 이끈 청년 장교들은 총리 관저, 대신 숙소, 군 고위층 자택을 급습해 주요 각료를

살해했다. 조선 총독을 지낸 78세 사이토 마코토 대신의 시신에는 총알 47발이 박혔다.

'2·26 사건'으로 불리는 이날 쿠데타의 핵심 세력은 위관급 장교들. 이들은 '존황토간(尊皇討奸·천황을

높이고 간신을 토벌)'으로 '쇼와유신(昭和維新)'을 이뤄야 한다고 천명했다.


쿠데타는 성공한 듯 보였다. 육군성·참모본부·경시청 등 주요 기관을 장악하고 계엄사령부를 구성했다.

덴노(天皇)는 당연히 쿠데타를 인정할 것으로 여겼다. 착각이었다. 히로히토 덴노는 자신을 보좌하던 측근 대신들의

살해를 용납하지 않았다. '혁명군'은 나흘 만에 '반란군'으로 전락했다. 핵심 주역은 처형되었다.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이들이 꿈꾼 시대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2·26 사건을 기점으로 일본은 군부가 중심이 되는 군국주의 국가로 달려갔다. 이들이 주창한 일본주의는

이후 대외 침략의 이념적 기틀로 실현된다. 45년간 일본 정치를 전공한 저자(국민대 명예교수)는 "쇼와 유신의 목표였던

군국주의 국가 총동원 체제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실패한 쿠데타는 역설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한다.


쇼와 유신 이념을 설계한 기타 잇키, 일본주의자 오카와 슈메이, 쿠데타를 디자인한 니시다 미쓰기 등 핵심 세력의

사상적 토대를 자세히 설명한다. 전사(前史)로서 다이쇼(大正) 시기의 정치·경제 상황을 먼저 서술한다.
        

원숭이도 복수 위해 사흘 밤을 기다린다


(조선일보 2018.03.10 신동흔 기자)


'복수의 심리학'복수의 심리학|스티븐 파인먼 지음|이재경 옮김|반니|272쪽|1만4500원


인간은 복수 이야기라면 넋을 잃고 빠져든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부모의 원수를 찾아나선 무협지,

미국 서부 영화에서 복수를 빼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영장류는 공동체 유지를 위해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에 보복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동료를 치어 죽인 자동차에 복수하기 위해 수십 마리의 바비원숭이가

사흘 밤낮을 길가에서 기다리다 다시 지나가는 차에 돌덩이 세례를 퍼부은 적도 있다.

침팬지는 기회가 올 때까지 보복을 미룰 줄도 안다. 인류의 사법 체계는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복수를

담당하는 보복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먼 옛날 부족시대 '눈에는 눈'이야말로 복수의 대원칙이다.


영국 배스대학교 경영학과 명예교수인 저자는 정치·문학·종교·직장 등 9개 장에 걸쳐 복수가 갖는 다양한 의미를 보여준다.

정치는 다양한 복수극을 빼놓고 설명조차 하기 힘들다.

영국에서 직장 내 언어폭력에 노출됐던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은밀하게 복수했는지 소개하는 것도 재미있다.

저자는 악의적인 복수가 아닌 '작은' 복수는 사기를 진작시키고 울분이란 부정적 심리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준다고 소개한다.
         

카메라 앵글에 담은 40人의 '문화 달인'


(조선일보 2018.03.10 변희원 기자)


'한국사람들'한국사람들|박상문 지음|예문아카이브|424쪽|2만8000원 


'생활의 달인'이란 TV 프로그램이 있다.

 지게꾼이든, 요리사든, 구두닦이든 자기가 하는 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내가 하는 일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거나 '한국이 싫다'는 '헬조선주의'에 빠질 때 보면 큰 도움이 된다.

노동하는 인간의 자존감을 확인할 수 있고, 그런 인간이 모여 사는 이곳도 꽤 살 만하다고 느끼게 된다.


이 책은 '생활의 달인'을 고급스럽게 지면으로 옮겨놓은 것이라고 봐도 좋겠다.

저자는 35년 동안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기록해온 사진기자다.

그가 지난 10년간 충무로, 인사동, 계룡산, 안동 하회마을, 남해 외딴섬 등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촬영한 인물 사진 중

250여 장의 사진을 엄선해 실었다.

책에 실린 40명의 한국 사람에는 도예가·서예가 등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장인뿐만 아니라 캘리그래퍼, 음악평론가,

악기 제작자 등 다양한 방면에 걸친 '달인'들이 포함돼 있다.

저자는 "자신이 하는 일에 가치를 더하고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과 이웃, 더 나아가 사회와 국가의 미래까지

고민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아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