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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친구 아빠는 40인데, 아빠는 왜 70이야"

바람아님 2018. 3. 11. 08:13

조선일보 2018.03.10. 03:03


[한대수의 사는 게 제기랄] 난, 일흔살 할배 로커
독거 노인 많은 세상에 말동무 아내 있어 다행
우린 절대 젊어지지 않아 오늘을 최고로 살라고!
기타 치는 일흔 살 ‘할배’ 로커. 사진 스튜디오는 우리 집 응접실. 사진작가는 딸 양호./한대수 제공

오는 12일은 내 70번째 생일이다. 감개무량하다. 양호가 말한다. "아빠, 진짜 70세야? 정말 늙었다. 수염도 참 하얗고, 우리 친구 Eugene(유진) 아빠는 41세인데. 그럼 아빠가 100세까지 살면 나는 40세가 되네, 100세까지 살 수 있지?" "그럼, 문제없어!"라고 답은 했지만 마음이 아프다.


우리 아버지가 생각난다. 1948년 내가 백일 된 갓난아기였을 때 촉망받는 물리학자로 미국 뉴욕으로 유학 갔던 아버지가 갑자기 실종됐다. 내가 열일곱 살 돼서야 FBI가 찾아내 아버지 얼굴을 처음 봤다. 그는 미국 여자와 결혼해 큰 인쇄소를 경영하고 있었다. 이름도 달랐다. 한국 이름 한창석은 사라지고 'Howard Harnne'이 됐다. 나는 결국 실망하고 집에서 가장 먼 뉴햄프셔 주립대학을 택했다. 다시는 아버지를 안 볼 생각이었다. 그는 출판계의 거물이었다. 워너브러더스에서 앨범이나 책 제작에 문제가 생기면, "Call Howie!(하위 불러!)", 대형 출판사 'Simon&Shuster'에서 큰 프로젝트를 할 때도 "Call Howie!"였다.


나는 상업사진 스튜디오에서 쭉 근무하다 아버지 밑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게 됐다. 회장님 아들은 정말 고통스러운 자리다. 잘해도 욕 들어 먹고 못해도 욕 들어 먹는 무기력한 자리다. 내 인생 가장 어려운 직업이 세일즈맨이었다. 아서 밀러의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만 떠올랐다. 결국 3년 되는 해 "아버지, 저는 인제 그만두겠습니다" 하고 뛰쳐나왔다,


시간이 흘러 내가 이혼하고 아버지를 동정하게 되고 아내가 떠나니 인생은 '내 마음대로 안 되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가 항상 하는 말 "Such is life!"(사는 게 다 그런 거야!)가 내 뒤통수를 때렸다. 80세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리는 2주에 한 번씩 '청기와' 식당을 찾았다. 아버지는 고등어 구이를 맛있게 드셨다. "생선구이는 한국 사람만 이렇게 맛있게 구울 수 있어" 하시면서. 다행히 돌아가시기 두 달 전에 한 살짜리 손녀 한양호와 키스를 했다. 눈물!


은퇴 생활은 또 다른 경험을 안겨준다. 늙어가는 것은 친구가 줄어드는 시기다. 찾아오던 출판사, 음반사, 공연기획사, 방송 PD들 모두 발걸음을 멈춘다. 친구들도 소식이 없다. 왜? 이용 가치가 없어진 것이다. 매일같이 마누라 치마 잡고 살아야 한다. 온종일 같이 있으니 항상 좋은 말로 시작해야 한다. "굿모닝"부터 "당신이 요리한 러시아 볼시(수프)는 참 맛있다" "아니야, 몸매 아직도 좋아. 40대 아줌마인데 뭐" "피자 먹을래? 그래 내가 지금 사올게" 이런 식으로. 안 그러면 하루가 괴롭다. 왜냐하면 나에게 하루하루가 고맙고 아까우니까. 말동무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특권인가. 세상에 독거 노인이 얼마나 많은가.


재작년에 많은 로커들이 죽었다. 내가 좋아하는 데이비드 보위는 69세에, 조지 마이클은 53세, 프린스는 57세에. 하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절대 젊어지지 않는다. "오늘이 나의 최고의 날이다(Today is the best day of my life)."

  

한대수 음악가 겸 사진가 겸 저술가